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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강원도 세존굿과 당금애기

2010년 단오 즈음 강원도 답사글. 



 1.

 단오굿을 포함한 강원도의 별신굿에서 “세존굿”은 빠지지 않는 제차다. 강원도의 세존굿은 자식을 점지하고, 수명장수하고, 자손이 잘되도록 비는, “산 자를 위한 굿”이다.1) 우리 일행은 이번 답사에서 두 번의 세존굿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한 번은 강릉 단오제, 다른 한 번은 삼척 선흥마을 단오제에서였다. 무대공연의 형식을 갖춘 강릉 단오제에서 무녀는 스탠드마이크 앞에 서서 세존굿을 행했다. 무대 한 쪽의 전광판에서는 굿에 대한 해설이 흘러나왔다.


<사진 1> 세존굿을 하는 무녀(강릉 단오제)         <사진 2> 전광판의 세존굿 소개(강릉 단오제)

    


 한편 전통적인 서낭당인 “음나무” 앞에서 행해진 선흥마을 단오제의 세존굿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무녀는 주민과 양중들에게 둘러싸여서, 제당 전체를 활보하며 굿을 행했다. 특히 이날은 직전까지 행해진 “한양굿”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었는지, 드라마틱한 세존굿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이 열광적이었다.


<사진3> 선흥마을의 세존굿(임순자 무녀와 주민들)


 강원도 세존굿을 특징짓는 것은 연행되는 청배신가(請拜神歌)인 “당금애기”이다. “당금애기”는 “바리공주”와 함께 한반도 전역에 널리 퍼져 있는 서사무가 형태의 무속 신화이다.2) 다양한 “당금애기” 이야기의 구조를 환원해 보면 다음과 같다.3)


 ① 중인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에게 시주공양을 왔다가 하룻밤 동침하고는 떠난다.

 ②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의 쌍둥이 아들들을 낳게 된다.

 ③ 아들들은 아버지인 남주인공을 찾아간다.

 ④ 남주인공은 아들들과 여주인공을 받아들이고 이 “가족”은 새로운 신분을 획득한다.


 이 기본적인 뼈대에 지역마다 다양한 살이 붙는다. “중”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여주인공(당금애기 또는 시준애기)은 어떤 집안의 딸인가? 두 사람의 권력관계는 어땠는가? 남주인공은 어떻게 여주인공을 유혹하는가? 태몽은 어땠는가?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을 사랑하는가, 원망하는가? 여주인공의 가족은 여주인공의 잉태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아들은 몇 명이었는가? 아들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가? 남주인공은 아들들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주는가? 다시 만난 가족이 획득하게 된 “새로운 신분”이란 무엇인가? 이와 같은 질문들에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내놓음으로써, “당금애기”에는 실로 다양한 변이가 존재한다.

 한 예로 “남주인공의 정체”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남주인공은 일반적으로 “성인님”이나 “제석”으로 불리고, 그 정체는 창세신인 미륵을 속이고 세상을 차지한 석가다.4) 한 무가 자료에서 그는 “사월 초파일에 태어난” 석가여래다.5) 충청도와 전라도의 많은 자료에서 남주인공은 “황금사” 혹은 “청금사”의 중이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남주인공이 “송불통”이라는 이름을 가지기도 한다. 제주도에서 이 남주인공은 거의 예외 없이 “주자선생”으로 불린다.6)

 남주인공의 신분은 “최고신”에서 “땡중”까지 다양하게 나타나는 셈인데, 이에 대응하는 여주인공의 신분 역시 “제석의 딸”이나 “서천서역국 공주”에서부터 “양반집 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대부분의 경우 남주인공의 신성이 강조될수록 여주인공은 평범한 인간이 되고, 반대로 여주인공의 신성이 강조될 경우, 남주인공은 평범한 중이 된다. 바로 이 점이 이 이야기를 단순한 중과 처녀의 스캔들이 아닌 주인공들의 통과의례적 변성에 대한 신화로 만든다.7) “승려”인 남주인공은 종종 여주인공과 자식들을 받아들이면서 환속한다. 한편, 여주인공과 자식들은 “신”이 된다. 여주인공은 “삼신”이나 “세존”이 되고, 아들들은 “삼불제석”이나 “보살”, “용왕”. “산신”, “성황” 등이 된다.

 강원도의 “세존굿”에서의 “당금애기” 이야기 역시 이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8) 그러나 각 무당 개개인의 활동지역이나 전승계보에 따라 각각의 “세존굿”에는 크고 작은 차이가 있다. 심지어 같은 강원도 동해안의 “세존굿”이라도 강릉에서는 남주인공이 “세존”이며, 영월에서는 여주인공이 “세존아가씨”이다. 두 사람 사이의 아들이 세 명이라는 점에서는 지역적 통일성이 보이지만, 아들들이 어떤 신이 되는지는 일치하는 자료가 거의 없다. 대개 아들들은 지역의 특징적인 무신(巫神)이 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대표적인 것이 “대관령국사”, “태백산 문수보살”, “금강산 신령”. “석불보살미륵”, “용왕맞이”, “서왕맞이” 등이다. 그리고 여주인공인 “당금애기”는 대부분의 자료에서 결국 “삼신할머니”가 된다.9)

 강원도 세존굿에 “당금애기” 유형의 이야기가 풀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확히 누가 “세존”인지를 떠나서 이 “세존 가족”은 결국은 자손을 점지하고 수명장수하게 하는 “삼신할머니”나 지역의 신령이 되어 인간들을 구제하게 된다. 바로 이 신성가족의 내력을 풀어내면서 세존굿은 자손들의 행복을 축원하는 “산자를 위한 굿”이 되는 것이다.


 2.

 그렇다면 실제 굿의 현장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는 어떻게 “실천”되는가? 똑같이 여성신의 추방과 신성화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죽음”의 냄새가 짙은 “바리공주” 이야기와는 달리, “당금애기”는 해학적이고 외설적이다. 특히나 오락성과 무당의 예능적 재능을 중시하는 강원도의 무속에서 “당금애기”는 비장한 신화라기보다는 즐거운 놀이마당이다.10)

 세존굿을 행하는 무녀는 부채와 흰 천을 들고는 재기 넘치는 사설과 구성진 창을 번갈아가며 좌중을 몰입시켰다. 세존굿을 제대로 집전할 수 있는 것은 오랜 기간의 훈련을 받은 “큰무당” 뿐일 정도로 방대한 양의 “대본”이 존재하지만, 현장에서의 사설 내용은 즉흥적으로 변형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무녀는 좌중의 분위기에 맞추어 “애들립”을 하기도 하며, 단오제 전체의 진행시간을 고려하며 굿을 자유롭게 압축하거나 과감히 생략하기도 했다.

 무녀는 양중들과 끊임없이 말과 노래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무녀는 스토리텔러이면서, 연기자이면서, 춤꾼이고, 동시에 가수였다. “당금애기”를 푸는 단계에서 무녀는 “신”의 입장이 아닌 “이야기꾼”의 자리에 서서 일인극을 한다. 무녀는 호색한 스님이 되었다가, 순진한 당금애기가 되었다가, 엄한 아버지나 오빠들이 되기도 하고, 어떻게든 당금애기를 감싸려는 어머니가 되기도 하고,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형제들이 되기도 했다.


<사진4, 5> 무녀의 열연(당금애기풀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맥락은 전형적인 “당금애기” 이야기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재미있고 흥미를 끌만한 내용들이 특별히 강조되었다. 스님의 내력이나 아들들의 성장과정은 “그 사연을 다 말할 수 없어” 상당 부분 생략되었다. 스님이 당금애기와 동침하기 위해서 갖은 핑계를 대며 수작을 거는 장면은 자세하고 드라마틱하게 구연되었다. 이 과정에서 “어리석은 당금아기”, “어리석은 것이 여자라”와 같은 관용구가 여러 번 반복되며, 젊은 여성들에 대한 훈계가 삽입되기도 하였다. 또한 두 사람의 동침 장면은 해학적으로 묘사되어 “신성혼이라는 의미를 무색하게”11) 했다.

 굿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주민들은 어깨춤을 추며 앞으로 나와 무녀의 옷에 만 원짜리 지폐를 꽂기도 하고, 무녀와 포옹하기도 하도, 당에 절을 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참여는 사설을 할 때보다는 창을 하는 중에 주로 이루어졌다.


<사진6 ,7> 주민들의 참여


 이어지는 살풀이와 배자에서 무녀는 주민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즐긴다. 이 시점에서 무녀는 고깔과 색동옷을 착용함으로써, “당금애기” 구연을 통해 청배한 신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 8> 세존굿 배자


 원래대로라면 이어질 순서는 “중잽이놀이”이다. 이것은 세존굿에 포함되는 놀이로, 제관 중 대표자에게 고깔을 씌워 “상좌”로 삼는다. “상좌”는 복숭아, 대추, 주걱, 쌀 따위의 물건들을 훔친 물건인 양 자루에 담아 지고는 관중들 사이로 도망을 다닌다. 그러면 양중들이 “도둑”인 “상좌”를 쫓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익살적인 장난을 치면서 웃음을 주다가 잡는다.12)

 흥미롭게도 이날 “상좌”로 선택된 것은 이 굿판의 주무 가운데 한 명인 한상호 법사였다. 그는 그날의 제관이라 할 만 했고, 승려이기도 했으니 “중잽이놀이”의 주인공으로서는 안성맞춤일 터였다. 그러나 법사의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무복과 고깔을 쓴 그는 “도둑”이 되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신이 내린 무당처럼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9, 10> “불사거리”가 되어버린 “중잽이놀이”


 무복을 입은 법사는 당에 절을 하고는 한양굿을 하듯 춤을 추고, 오방기와 향을 들고 굿당 주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공수를 주기까지 하였다. 이것이 사전에 협의된 조합이었는지, 아니면 우리 일행이 선흥마을에서 숱하게 마주친 이질적인 의례체계 사이의 “어긋남” 가운데 하나였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세존굿 전체를 지배하던 유쾌한 “놀이판”이 마지막에 와서 진지하고 엄숙한 제의로 반전되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강원도 세존굿의 대단원이며 주민들의 참여가 보장되는 모처럼의 “중잽이놀이”는 한양굿의 “불사거리”나 “제석거리”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런 불일치는 이후의 “충돌”에서 더욱 극적인 형태로 드러나게 되었다.


3.

 신화와 의례에 대한 전통적인 구분에도 불구하고, 신화는 적어도 말해지는 순간에는 의례가 된다. 무속신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채록된 무가자료의 내러티브와 구조를 문학적으로 분석하는 작업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굿의 현장에서 무엇을 위하여, 누구에 의해, 어떤 몸짓으로 노래되는가 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은 중요하다. “당금애기”의 강원도 판본들에는 “세존굿”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야만 온전히 접근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답사를 통해 경험한 “세존굿”은 의례의 의미가 얼마나 다양하고 역동적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고 본다. 무대예술의 형식을 한 강릉 단오제의 세존굿은 당금애기를 주인공으로 한 1인 창극이었다. 그것은 무당과 주민의 어울림이나 “중잽이놀이”와 같은 참여가 끼어들 수 없는 구조이다. 한편 선흥마을 단오제의 세존굿은 “산자를 위한 굿”으로서 강원도 별신굿의 축제적, 오락적 분위기를 한껏 느끼게 해 주었다.

 또한 “중잽이놀이”의 변형은 인상 깊다. “중잽이놀이”는 말하자면 기껏 몇 십 분에 걸쳐 청배한 “세존”을 도둑으로 몰아 희롱하는 셈이다. 이것은 신을 호색한 중이나 세상물정 모르는 어리석은 미혼모로 조롱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중도둑”으로 만들어 놓고는 양중과 마을 사람들이 합세하여 잡는 놀이다. 또한 도둑질한 물건은 “선물” 혹은 “약”이 되어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진다. 그러나 “한양굿의 영성”에 익숙한 이들에게 이와 같은 구도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선흥마을의 세존굿에서 마을 사람들이 “데리고 놀아야 할” 중은 그 “영매”를 옮겨가면서 범접할 수 없는 영험한 신으로 변모하였다.

 사실 채록된 텍스트만 놓고 보면 당금애기 신화가 당금애기의 기구한 운명과 그 극복에 대한 비극적인 이야기인지, 중과 당금애기의 동침에 대한 해학적인 음담패설인지, 혹은 자신들 본연의 신성을 찾아가는 아들들의 영웅담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세존굿 현장의 즐거운 장단과 경쾌한 창, 재치 있는 사설과 주민들의 유쾌한 분위기를 경험한다면, 언어를 넘어 느껴지는 이 신화의 “산 자를 위한 영성”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1) 윤동환, 『동해안 무속의 지속과 창조적 계승』, 민속원, 2010, 196~197쪽.

2) “당금애기” 유형의 무속신화는 제석굿, 세존굿, 제석본풀이, 초공본풀이, 당금애기풀이, 중굿 등 다양한 제목으로 알려져 있으나, 여기서는 홍태한의 견해를 받아들여 “당금애기”를 이 서사형식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홍태한, 『서사무가 당금애기 연구』, 민속원, 2000.

3) 다양한 방식으로 채록되거나 필사된 당금애기 자료는 다음 두 권의 책으로 집성된 바 있다. 김진영 ․ 김준기 ․ 홍태한, 『당금애기 전집』1·2, 민속원, 1999. 이 자료집에는 강릉, 영월, 속초 등지의 세존굿 무가도 포함되어 있으나, 이번 답사에서 조사된 세존굿들의 사설과 완전히 일치하는 자료는 하나도 없다.

4) 북한 지역과 경기도, 강원도 일부 자료에서 발견되는 유형이다.

5) 김용식 구연, 「제석본풀이」, 서대석, 『한국무가의 연구』, 문학사상사, 1980, 324~375쪽.

6) 주인공들의 이름에 대한 비교는 홍태한, 앞의 책, 25~26쪽의 표를 참조.

7) 김영일, 「‘제석본풀이’와 나바호의 ‘쌍둥이’ 영웅담」, 『한국 무속과 신화의 연구』, 세종출판사, 2005.

8) “세존굿”에서 “당금애기”를 서사무가로 푸는 것은 동해안에서도 강원도지역의 특성이다. 윤동환, 앞의 책, 197~199쪽 참조.

9) 주인공들이 마지막에 어떤 “신직(神職)”을 얻는지에 대해서는 홍태한, 앞의 책, 39~40쪽의 표 참조.

10) 이하의 내용은 선흥마을 단오제의 “세존굿”에 대한 관찰이다.

11) 홍태한, 앞의 책, 106쪽.

12) 강릉단오제 홈페이지 (http://www.danoje.org/) “제례와 굿→단오제→세존굿”; 최길성, 「세존굿과 도둑잡이의 구조분석」, 『한국민속학』12, 민속학회, 1980. 참조. 공연화된 강릉단오제에서는 “제관”인 마을 사람이 없으므로 “중잽이놀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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