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수업에서 쓴 레포트입니다.
2005년에 쓴 걸로 보입니다.
도서관에서 삼국유사 한 권을 빌려다가 <눈 스캔> 스킬로 자료 뽑아내서
하루만에 쓴 괴작입니다.
<눈 스캔>은 지금도 가끔 쓰지만 쓰면 쓸수록 난시가 심해지는 악마의 기술입니다.
삼국시대 불교설화의 신통력 사례 조사
들어가는 글
삼국시대 불교의 전래는 문화 전반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종교사적으로는 불교의 전래를 통해 소위 무불교대(巫佛交代)가 일어났다고 말한다. 기존에 무당과 무속이 담당하던 많은 직능을 불교의 승려와 불교가 대신해서 담당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는 ‘대신’ 담당했다기보다는 일종의 경쟁 관계 속에서 불교가 기존에 무속이 하던 직능을 동시에 행하였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심지어 불교전래 초기에는 승려의 역할이 치병 등 주술적인 것에 집중되어 있어 무당과 구분조차 어렵다. 그런데 이것은 세계종교가 전파될 때의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적응주의 전략으로 동아시아에서 효과적인 전교를 했던 예수회 수도사들의 경우도 그랬다. 그들은 불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일본에서는 머리를 깎고 승려 차림을 했고, 유학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던 명나라에서는 선비 차림을 하고 유교적인 언어로 그들과 토론을 했다.1) 삼국시대 불교가 전래될 때에도 일종의 적응주의 전략이 실행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속의 어떤 직능을 불교가 담당하였는가? 이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반도 지역의 고대 사회에 존재했던 무의 특성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시베리아의 샤먼과 비교해 보았을 때, 한국의 무는 탈혼(ecstasy)의 측면보다는 빙의(possession)의 측면이 두드러진다. 또한 중요한 기능에는 의례, 치병, 점복 등이 있었다. 그래서 최남선은 샤먼의 기능을 사제, 치유자, 예언자로 구분하기도 했다. 이러한 의례, 치병, 점복 등은 원리적으로는 초월적인 존재와의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그 방법은 주술적인 것이었다. 2)
불교 전통 내에는 이미 이러한 기능을 대체할 만한 요소가 있었다. 석가모니의 제자 가운데 하나인 목건련(Maudgalyayana)은 제자 가운데 신족제일(神足第一)이라고 불릴 정도로 신통력에 능했다고 한다. 그는 33천을 오르내리고, 용왕을 교화하고, 33천의 부처님들에게 교화를 청하는 등 마치 헤르메스 같은 신화적 전령의 역할을 했다. 이것을 샤먼이 경험하는 신비체험의 유형으로 해석한다면, 불교적인 신통력은 빙의보다는 탈혼에 가까운 것이 될 것이다. 또한 인도의 민간종교의 요소들을 풍부하게 받아들인 밀교 계통의 불교에서 주술적인 요소들은 매우 일반적인 것이었다. 불교의 이러한 요소들이 기존의 무가 담당하던 역할과 겹치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며, 특히 민간불교에서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준 것이다.
여기에서는 삼국시대의 불교 설화, 특히 삼국유사의 기록 가운데 승려가 신통력을 보이는 사례를 찾아볼 것이다. 그리고 신통력의 유형 별로 그것이 기존에 무가 담당하던 기능의 어떤 부분과 대체 가능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무의 주술과 구별되는 불교적 주술의 특징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1.병을 치유하는 승려들
병을 치유하는 것은 새롭게 등장하는 종교가 흔히 사용하는 이적이다. 종교적 치유가 가장 효과적인 치병 수단이던 시절에, 강력한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종교의 영험함이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는 승려가 주술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병을 치유하는 사례가 9건이 등장한다.
(1-a) 묵호자가 향을 피워 눌지왕의 왕녀를 치유한 사례 <흥법>
(1-b) 아도가 성국공주를 치유하고 흥륜사를 건축한 사례 <흥법>
(1-c) 원광을 곁에 두고 있던 왕의 병이 나았다는 사례 <의해>
(1-d) 밀본법사(密本法師)가 《약사경》을 읽어 여우를 퇴치하고 선덕여왕을 치유한 사례 <신주>
(1-e) 밀본법사가 승상 김양도(金良圖)에게 붙은 귀신을 퇴치한 사례 <신주>
(1-f) 당의 무외삼장이 혜통(惠通)의 터진 이마를 치유해 준 사례 <신주>
(1-g) 혜통이 귀신과 교룡을 쫓아내고 당나라 공주를 치료한 사례 <신주>
(1-h) 혜통이 왕녀를 치료하고 자신과 정공을 신원시킨 사례 <신주>
(1-i) 혜통이 신문왕의 등창을 치유하고 신충(信忠)의 원한을 풀어준 사례 <신주>
이상과 같은 치유 사례는 다시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겠다. 우선 삼국유사에는 그 편명에 나타난 주제에 따라 치유사례가 기록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먼저 [흥법]에 실린 사례들은 초기에 불교가 전래되던 시기의 사건들이다. 묵호자와 아도는 기존의 무(巫)나 의(醫)가 치유하지 못하는 병을 치유하면서 불교의 영험함을 증명한다. 이러한 경우, 주된 경쟁 상대는 巫이며, 치유의 대가는 절을 짓는 등 포교와 관련된 것이다.
(1-a) 이때 왕녀가 병이 위급했는데, 묵호자를 불러다 향을 피우고 기도를 드리게 했더니 병이 곧 나았다. 왕이 크게 기뻐하며 후하게 사례했는데, 얼마 안 되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1-b) 3년 되던 해에 성국공주(成國公主)가 병들자 무당과 의원(巫醫, 혹은 巫術을 사용하는 의사)도 효험이 없었으므로, 사방에 칙명을 내려 의원을 찾았다. 법사(아도)가 급히 대궐로 나아가 그 병을 고치자, 왕이 크게 기뻐하며 그가 원하는 것을 물었다. …… “빈도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천경림에 절을 세워 불교를 크게 일으키고, 나라의 복을 빌고 싶을 뿐입니다.”
한편, <신주>편에 실린 치유 사례의 주인공들은 밀본법사와 혜통과 같은 밀법승들이다. 여기에 실린 사례들에서는 주로 승려가 사용한 치유 방법에 대한 신비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이것은 단순히 향을 피워서 치유를 끝낸 묵호자나, 심지어 병을 고쳤다는 말만 있고 어떻게 고쳤는지에 대한 묘사가 없는 아도와 대조적이다. 다음은 밀본법사의 두 가지 치유사례이다.
(1-d) 선덕왕 덕만(德曼)이 병들어 오랫동안 낫지 않자, 흥륜사 중 법척(法惕)이 부름을 받아 병시중을 들었지만 오래 되어도 효험이 없었다. 이때 밀본법사가 덕행이 높다고 온 나라에 소문나, 좌우에서 법척과 바꾸기를 청했다. 왕이 밀본을 궁중으로 맞아들이자, 밀본이 왕의 거처 곁에서 《약사경》을 읽었다. 경을 다 읽고 나자 지니고 있던 육환장(六環杖)이 침실 안으로 날아들어가, 늙은 여우 한 마리와 법척을 찔러 뜰 아래로 거꾸러지게 했다. 그러자 왕의 병이 곧 나았다. 이때 밀본의 이마 위에서 오색의 신비로운 광채가 나서, 보는 자들이 모두 놀랐다.
(1-e) 승상 김양도가 어렸을 때에 갑자기 입이 붙고 몸이 굳어져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 적이 있었다. 언제나 보면 큰 귀신 하나가 작은 귀신 무리를 이끌고 들어와, 집안에 있는 음식을 모두 먹어버렸다. 무당이 와서 굿을 하면 귀신들이 다투어 모욕했다. 양도는 귀신들에게 물러가라고 명령하려 했지만,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가 이름이 잊혀진 법류사의 중을 청해다 불경을 읽게 했더니, 큰 귀신이 작은 귀신에게 시켜 철퇴로 중의 머리를 때려 땅에 자빠뜨리게 했다. 중은 피를 토하고 죽었다. …… “밀본법사가 우리 청을 받아들여 곧 오겠다고 합니다.” 여러 귀신들이 그 말을 듣고 모두 얼굴빛을 잃었다. 작은 귀신이 말했다. “법사가 오면 불리하게 될 테니,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큰 귀신이 거만스럽게 말했다. “무엇이 해로우랴.” 조금 뒤에 사방에서 크고 힘센 신령들이 모두 쇠갑옷과 긴 창을 가지고 와서 여러 귀신들을 붙잡아 묶어 갔다. 그 다음에 무수한 천신들이 둘러서서 기다리자, 얼마 안 되어 밀본이 왔다. 경을 펴기도 전에 그 병이 나아 말이 통하고 몸도 풀리게 되자, (양도가) 그 일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양도는 이 일 때문에 불교를 독실히 믿고 평생 게을리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흥법>의 치유 사례에서 巫醫가 치유에 있어서 경쟁 상대였다면 여기에서는 무도 등장하지만 승려 사이의 경쟁 관계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는 사실이다. 앞의 것이 불교의 영험함을 강조하며 무불교대의 상황을 표현해 주고 있다면, 여기에서는 승려 개인의 영험함이 더 강조되고 있다. 또한 앞에서는 병의 원인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은 반면에, 여기에서는 구체적인 외부의 존재가 드러나 있다. 1-d의 이야기에서는 그것이 늙은 여우이고, 1-e에서는 귀신(鬼)이 지목되고 있다. 늙은 여우는 변신술과 신통력을 부리는 지혜와 악의 상징이고3), 귀신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져다주는 초자연적 존재이다.
이러한 존재들은 토착적인 차원의 설화에서 이미 나타나 있다. <기이>의 도화녀․비형랑(桃花女 鼻刑郞)조에 등장하는 비형랑은 귀신을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귀신을 다루어 귀교(鬼橋)라는 다리를 짓기도 하고, 길달(吉達)이라는 귀신을 불러내 벼슬살이를 시키기도 한다. 어느 날 길달이 달아나는 바람에 비형이 귀신을 시켜 잡아 죽이는데, 도망가는 길달은 여우로 변신했다고 한다. 귀신이 개체적인 인격
이나 이름을 가진다거나, 여우로 변신한다거나 하는 사고는 매우 근원이 깊은 불교 이전의 요소라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다른 초자연적 존재의 힘을 빌려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비슷하다. 단 비형랑의 경우는 그것이 아직 적대적인 귀신과 분화가 일어나지 않은 다른 귀신이지만, 밀본법사의 경우는 대력신(大力神)이나 천신(天神)과 같은 신격이라는 점에 차이가 있다.
삼국유사에서 치유와 관련된 설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혜통(惠通)이다. 그는 출신이 확실하지 않은 인물인데, 자신이 잡아 죽인 수달이 죽어서 뼈가 되어서까지 새끼들을 지키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출가를 결심한다. 그는 당나라로 건너가 인도 마갈타국(摩竭陀國) 출신의 승려 무외삼장(無畏三藏)에서 신통력을 전수받은 후 대단한 치유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가 처음 삼장을 찾아갔을 때, 삼장은 “우의(嵎夷)의 사람이 어찌 법기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혜통은 모욕을 참으며 3년 동안 그를 섬겼지만 제자로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1-f)……분하고 애가 타서, 불이 담긴 동이를 머리에 이고 뜰에 섰다. 잠시 뒤에 이마가 터졌는데 그 소리가 천둥소리 같았다. 삼장이 그 소리를 듣고 와 보더니, 불동이를 치우고 손가락으로 이마 터진 곳을 만지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상처가 곧 아물어 평시와 같아졌는데, 흉터가 생겨 왕(王)자 같아 그를 왕화상이라고 불렀다. (삼장이 그를 깊이 사랑하고 큰 그릇으로 여겨 심법을 전수했다.
이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실의 공주가 병이 들어 당 고종이 삼장에게 치유를 부탁하게 되었다. 그러자 삼장은 자신 대신 혜통을 천거했다.
(1-g) 혜통이 명을 받고 따로 거처하면서 흰 콩 한 말을 은그릇 속에 넣고 주문을 외웠다. 그 콩알을 흰 갑옷 입은 신병으로 변하게 해서 귀신을 쫓았지만, 이기지 못했다. 그러자 또 검은 콩 한 말을 금그릇 속에 넣고 주문을 외웠다. 검은 갑옷 입은 신병으로 변하게 해서 두 빛깔의 신병들이 합해 귀신을 쫓게 하자, 갑자기 교룡이 나타나 달아나고 공주의 병은 곧 나았다.
밀본법사 이야기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났던 요소들이 여기에서는 훨씬 더 강조되어 있다. 우선 병의 원인이 귀신, 특히 교룡(蛟龍)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으며, 콩과 은그릇을 이용하는 주술적인 방법이 묘사되었고, 다른 초자연적 존재(神兵)을 부리고 있다. 특이한 것은 병의 원인으로 지목된 교룡이 계속해서 모습을 바꾸어 가며 혜통과 대결을 계속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 용은 혜통에게 앙심을 품고 신라로 날아가 더 심하게 인명을 해친다. 이에 정공(鄭公)이라는 인물이 혜통을 신라로 부르고, 혜통은 신라에서도 용을 퇴치한다.
그러자 이 용은 이번에는 정공을 원망하며 버드나무로 변해 정공이 자신을 매우 아끼도록 저주를 건다. 얼마 후 신문왕이 죽어 왕릉으로 가는 길을 닦는데, 그 길을 용이 변한 버드나무가 막고 있었다. 용에게 홀린 정공은 “나무를 베느니 차라리 내 목을 베라.”고 막았고, 화가 난 왕은 정공을 죽이고 혜통 역시 죽이려고 한다. 그러나 혜통은 자신을 죽이러 온 군사들을 신통력을 부려 쫓아내었고, 얼마 후에는 병에 걸린 공주까지 치료한다. 이 일로 정공과 혜통의 억울함이 풀렸고 두 사람은 사면복권된다.(1-h) 그리고 용은 이번에는 기장산의 웅신(熊神)으로 변신해 사람들을 해친다. 이 기나긴 싸움은 혜통이 용을 달래어 불살계(不殺戒)를 주고서야 마무리된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을 무당으로 바꾸어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혜통이 신문왕의 등창을 고쳐주는 사례(1-i)는 더욱 그러하다. 혜통은 등창을 치유한 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폐하께서 전생에 재상이었을 때에 착한 사람 신충(信忠)의 죄를 잘못 판결해 종을 삼았으므로, 신충이 이를 원망해 환생하실 때마다 보복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등창도 역시 신충이 저주해서 생긴 것이니, 신충을 위해서 가람을 세우고 명복을 빌어 원한을 풀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와 같은 병인론은 무속의 것과 매우 가깝다. 죽은 사람의 원한이 병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거기에 윤회논리가 결합되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 원한은 전생의 것이고, 보복은 환생할 때마다 계속된다. 혜통은 당장의 병을 치유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병을 일으키는 업의 근원을 끊을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앞의 교룡 퇴치 이야기와 병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충은 혜통에게 있어서 교룡과 같은 존재이다. 또한 계속해서 다른 형태로 보복하는 존재로서 신충과 교룡은 같은 성격을 지닌다. 즉 병은 재앙을 가져오는 근원적인 존재를 달래어야만 끝난다는 것이다. 또한 두 이야기에는 모두 왕의 잘못된 판단으로 고통을 받는 이들이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혜통의 치유 이야기는 다소 현실 비판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상의 사례와는 조금 다른 유형의 치유 사례가 <의해>편에 등장한다. 세속오계를 지은 원광법사의 제자 원안은 스승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겨두고 있다.
(1-c) 본국의 왕이 병들었는데, 의원이 치료해도 차도가 없었다. 그래서 원광을 궁중으로 초청해 따로 잘 모시고는, 밤마다 두 차례씩 심오한 법을 강설하게 했다. 왕은 계를 받아 참회하고, 그를 매우 신봉했다. 한번은 초저녁에 왕이 원광의 머리를 보았더니 금빛이 찬란했으며, 태양의 둘레 같은 모습이 그의 몸을 따라다녔다. 왕후와 궁녀들도 다 같이 이 모습을 보았다. (왕이) 이로부터 더욱 승심(勝心)이 나서 원광을 병실에 머물러 있게 했더니, 오래지 않아 병이 다 나았다.
이 이야기에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개입도, 향을 피운다거나 하는 정도의 간단한 주술적인 형식도 없다. 심지어 원광은 병을 치유하려고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는 단순히 경을 강설했고, 병은 저절로 나았다. 경을 읽는 것은 밀본법사가 《약사경》을 읽어서 병을 치유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밀교의 일반적인 주술 방법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주술적인 방법의 개입이 없이 단지 메시지와 카리스마만으로 치유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이 이야기는 밀본법사나 혜통의 설화에서와 같은 신화적 재구성이 거의 일어나지 않은 상태의 치유 설화일 가능성이 있다. 심원한 종교적 가르침을 듣고 참회하면서 병의 자가 치유를 경험하는 것은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원서사(proto-narrative)가 긴 전승 과정을 거쳐서 풍부한 소재의 이야기로 다듬어진 것이 <신주>편의 치유설화들이 아닐까 한다.
2.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주술적 신통력들
무의 직능에는 병을 치유하는 기능 이외에도 원하는 다양한 결과를 얻기 위한 기복적인 주술도 있다. 치병 기능에 있어서 승려들은 무와 명백한 대립관계를 보인다. 승려들은 무가 치유하지 못한 병에 개입하여, 무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병의 원인이 되는 존재를 퇴치한다. 그러나 병을 치유하는 일 이외에는 이러한 경쟁관계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신통력들 가운데 상당수는 명백하게 기존에 무가 하던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실로 다양한 신통력을 사용하는 승려들이 등장한다. 다음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2-a) 명랑법사(明朗法師)가 만다라진을 펴 당나라 군사를 막아낸 사례 <기이 하>
(2-b) 지명법사(知命法師)가 서동과 선화공주의 금을 신라로 수송한 사례 <기이 하>
(2-c) 지명법사가 신통력으로 산을 무너뜨리고 못을 메워 미륵사를 세운 사례 <기이 하>
(2-d) 보덕화상(普德和尙)이 보장왕의 도교 수용에 반발하여 신통력으로 암자를 완산주 고대산으로 옮긴 사례 <흥법>
(2-e) 진표율사(眞表律師)가 고성군의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물고기를 먹인 사례 <의혜>
(2-f) 유가종의 대던 대현(大賢)이 비를 빌고 우물물을 일곱길 높이로 솟아나게 한 사례 <의해>
(2-g) 화엄종의 대덕 법해(法海)가 창해의 물을 기울여 홍수를 일으킨 사례 <의해>
한편, 《삼국사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이세민은 요동성을 공격하여 밤낮으로 쉬지 않고 12일이나 계속했다. 황제는 정병을 이끌고 가서 합세하여 성을 수백 겹으로 에워싸고 북치고 고함을 지르니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성에는 주몽의 사당이 있었고 그 사당에는 갑옷과 창이 있었는데, 망언하기를 전연시대에 하늘이 내린 것이라 했다. 한창 포위하여 급박해지자 미녀를 꾸며 부녀신(婦女神)을 만들었는데, 巫가 말하였다. ‘주몽이 기뻐하니 성이 반드시 온전하리라.’ (《삼국사기》 권21 보장왕 4년조)
여기서는 巫가 미녀를 꾸며서 주몽에게 바치는 의례를 통해서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다. 그런데 (2-a)의 설화에서는 이와 유사한 의례가 행해지고 있다.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한 후, 당나라의 병사 가운데 일부가 신라에서 행패를 부리자 신라가 이를 깨닫고 군사를 일으켰다. 그런데 이 사실에 트집을 잡아 당 고종이 군사를 일으켰다. 이때 의상이 당나라에 유학중이었는데, 그는 볼모로 잡힌 김인문을 만나서 이 사실을 듣고는 급히 신라에 돌아와 왕에게 알린다. 이때 각간 김천존(金天尊)이라는 인물이 용궁에서 비법을 전수받았다는 명랑법사를 천거한다. 명랑법사는 상황을 들은 후 다음과 같은 의례를 행한다.
(2-a) 채색 명주로 절을 꾸미고, 풀로써 동, 서, 남, 북과 중앙의 다섯 방위를 맡은 신상을 만들어 세웠다. 그리고 유가명승(瑜珈明僧) 열두 명을 두었는데, 명랑법사를 우두머리로 하여 문두루(文豆婁)의 비법을 썼다. 이때 당나라 군사와 신라 군사가 아직 접전하기 전이었는데, 갑자기 바람과 물결이 거세게 일어 당나라 배가 모두 침몰되었다.……신묘에 당나라에서 다시 조헌(趙憲)을 장수로 삼아 역시 5만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왔는데, 또 그 비법을 베풀었더니 전과 마찬가지로 배가 침몰되었다.
여기에서도 전쟁의 승리를 위해 주술적인 의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두 가지의 표면적인 의례 모습은 많이 다르다. 그러나 앞의 의례에서 여성을 ‘부녀신’으로 꾸민 것처럼, 여기서도 채색 명주와 풀로 절을 꾸며 만다라를 만들고 있다. 가상으로 상징을 꾸며 원하는 결과, 특히 전쟁에서의 승리를 얻어내려고 한다는 점에서 두 의례는 같은 성격을 지닌다. 여기에서 무는 경쟁자로 등장하지 않지만 이와 같은 의례는 원래 무가 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에 오면 승려는 이미 무의 치유자로서의 직능뿐만이 아니라 사제로서의 직능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두드러지는 것이 거대한 물체를 이동시키는 신통력이다. 여기에서는 (2-b)와 (2-d)가 해당된다.
(2-b) 서동이…그 금을 모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는, 용화산 사자사(師子寺)에 있는 지명법사에게 나아가 금 수송할 방법을 물었더니, 법사가 말했다. “내가 신통력으로 보낼 수 있으니, 금을 가져오시오.” 공주가 편지를 써서 금과 함께 사자사 앞에 가져다 놓았더니, 법사가 신통력을 써서 하룻밤 사이에 신라 궁중으로 실어 보냈다. 진평왕이 그 신통한 조화에 놀라면서 (서동을) 더욱 존경해, 늘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었다. 서동이 이로 말미암아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
(2-d) 이때 보덕화상이 반룡사에 머물고 있었는데, 좌도(左道)가 정도(正道)에 필적해 나라의 운수가 위태로워질 것을 걱정해 왕에게 여러 차례 간했지만, 왕이 듣지 않았다. 그래서 신통력으로 방장(方丈:절)을 날게 해 남쪽 완산주 고대산(孤大山)으로 옮겨 살았다. …얼마 안 되어 나라가 망했다. 지금 경복사에 날아온 방장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라고 한다.
두 가지 사례는 동기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사람이 운반할 수 없는 큰 물체를 신통력으로 나르고 있다. (2-b)에서는 백제의 왕족으로 신라의 선화공주와 결혼한 서동이 신라의 진평왕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이런 주술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2-d)에서 보덕화상은 도교를 수용한 보장왕과 연개소문에게 반발하여 절을 옮겼다. 전자의 결과는 긍정적인 것이고, 후자의 말로는 부정적인 것이었다. 공통점은 주술의 시전자가 결국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데에 있다. 이것은 위의 (2-a)과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통력을 사용했다는 데에서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2-c)의 사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c)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로 거둥하는 길에 용화산 밑에 있는 큰 못가에 이르렀는데, 미륵 삼존이 못 속에서 나타나기에 수레를 멈추고 절했다. 부인이 왕에게 말했다. “이곳에 큰 가람을 세우는 것이 참으로 제 소원입니다.” … 지명법사에게 가서 못 메울 일을 묻자, 신통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무너뜨려 못을 메우고 평지로 만들었다.
이러한 종류의 신통력은 초인적인 힘으로 특정한 목적에 봉사하고 있다. 그런데 사례에 따라 그 목적은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교파들이 경쟁하던 시기에는 교파 사이의 갈등이 이러한 신통력의 사례를 통해서 나타나기도 하였다.
(2-f) 경덕왕 천보 12년 계사(753) 여름에 큰 가뭄이 들자, 대현을 대궐로 불러들여 《금광경(金光經)》을 강론해 단비를 빌게 했다. 어느 날 재를 올리는데 바리때를 열어놓고 한참 있었지만, 정수(淨水)를 바치는 것이 더뎠다. 감독하는 관리가 꾸짖자, 공양하는 자가 말했다. “궁중의 우물이 말라버려 먼 곳에서 물을 길어 오느라고 늦었습니다.”……그날 낮에 강을 할 때 대현이 향로를 받들고 잠자코 있자, 잠깐 사이에 우물물이 일곱 길이나 솟아 나와서 찰당(刹幢)과 같게 되었다. 궁중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그 우물의 이름을 금광정이라고 했다.
(2-g) 그 이듬해 갑오(754) 여름에 왕이 또 대덕 법해를 황룡사로 청해다 《화엄경》을 강하게 하고, 친히 거둥해 향을 피우며 조용히 말했다. “지난 여름에 대현법사가 《금광경》을 강해서 우물물을 일곱 길이나 솟아나게 했는데, 그대의 법도는 어떠하오?” 법해가 아뢰었다. “그런 것은 아주 작은 일이어서 칭찬할 게 못 됩니다. 지금 바로 창해의 물을 기울여 동악(東岳:토함산)에 넘쳐오르게 해 서울까지 흐르게 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동쪽 연못이 이미 넘쳐서 내전 50여 간이 모두 떠내려갔습니다.” 왕이 멍하니 넋을 잃자, 법해가 웃으면서 아뢰었다. “동해를 기울이려고 했더니 수맥이 먼저 불어났을 뿐입니다.” 왕이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 절했다.
이 이야기가 가리키는 바는 명백하다. 여기에는 유식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유가종과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화엄종이 신라에서 부딪혔으며, 결국 화엄종이 주도권을 잡았다는 역사적 사실이 드러나 있다. 이런 유치해 보이기까지 하는 술법 싸움의 목적은 각자의 법력에 대한 과시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통력이 모두 이기적인 목적의 성취를 위해서만 행해진 것은 아니었다. 진표율사의 사례(2-e)에 주목할 만하다. 진표는 미륵보살과 지장보살에게 직접 계와 간자를 받은 고승이었다. 또한 그는 용왕과 권속들의 힘을 빌려 금산사를 창립하였다. 그에 대해서는 <진표전간眞表傳簡>조와 <관동 풍악산 발연수 석기關東楓岳鉢淵藪石記>조에서 모두 기록되어 있어, 두 가지가 병렬된다. 두 기록은 마치 공관복음서처럼 조금씩 내용이나 순서가 다르게 진표가 소, 물고기, 자라 등에게 계법을 전하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런데 <진표전간>조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가 <관동 풍악산 발연수 석기>조에는 등장하고 있다. 진표가 물고기와 자라가 만들어준 다리를 밟고 바다에 들어가 그들에게 계법을 전한 직후의 일이다.
(2-e) 그때 명주 지방에 흉년이 들어 인민들이 굶주리고 있었는데, 율사가 그들을 위해 계법을 강설하자 사람들이 불법을 받들어 지켜서 삼보(三寶)에 공경을 다했다. 그러나 고성 바닷가에 수없이 많은 물고기들이 저절로 죽어 나왔다. 인민들이 이 물고기들을 사 먹고 굶어 죽기를 면했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신통력의 영역은 아니다. 명백하게 주술적인 방법이 동원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이런 초자연적인 능력이 이기적인 목적의 성취가 아닌 자비의 실현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불교적인 메시지를 가진 주술이 일반적인 주술과 차별되는 것은 이런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에서 그런 사례를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3.샤먼적 도약과 통과
이상의 불교 설화들을 통해 승려가 마치 巫의 직능을 대신하는듯한 사례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는 기본적으로 초자연적 존재와의 접촉을 통해 인간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종교직능자이다. 그러므로 무와의 비교를 통해 삼국시대 불교 설화의 신통력 사례를 조사하는 이 글에서는 승려가 초자연적 존재와 어떤 방식으로 접촉했는지를 언급해야만 한다.
초자연적 존재와 접촉하는 방식에는 강신(possession)과 탈혼(ecstacy)이 있다. 일반적으로 탈혼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고, 한국의 무속에서는 강신이 두드러진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은 여러 시대의 무속 현상을 통틀어 행한 구분이지만 삼국시대의 사례에서도 한국의 무에게는 강신이 두드러지는 듯하다.
태후 우(于)씨가 죽자 태후의 유언에 따라 2번째 남편이었던 고국천왕의 혼령이 무자(巫者)에게 강림하여 말하기를 ‘어제 우씨가 산상왕에게 온 것을 보고 내가 분함을 참지 못하여 드디어 그녀와 싸움을 벌였다. 물러나 생각하니 낯이 뜨거워 백성을 볼 수가 없으니, 네가 조정에 고하여 무슨 물건으로 나를 가리워 달라’고 했다. 이에 고국천왕의 능 앞에 소나무를 일곱 겹으로 심었다. (《삼국사기》 권 17)
그런데 무와 직능상 많은 측면에서 겹치는 삼국시대의 승려의 경우에는 강신보다는 탈혼으로 해석할 수 있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것은 삼국의 사례뿐만이 아니라 서두에서 소개한 (대)목건련의 신족(神足)에 대한 설명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그는 33천과 용궁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백중에 행하는 우란분재 역시 목건련에 대한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죽은 부모를 찾아가 보니 아귀에게 시달리고 있어 부처님께 구제할 방법을 물었고, 그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우란분재에 드리는 공양이라는 것이다. 또한 용수 보살은 기도를 하던 중 용궁으로 내려가 화엄경을 외워 와서 기록했다고도 한다. 이처럼 불교 전통에서는 강력한 영적 존재에게 사로잡히는(빙의되는) 것 보다는 스스로 다른 세계로 상승, 하강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다.
삼국시대의 불교 설화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설화들이 승려들의 체험 내용을 묘사한 것인지, 아니면 전승을 통해 신화적 구조가 표면화한 것인지 구분하기는 어렵다. 여기에서는 우선 다른 세계로의 이동 및 소통이 분명히 드러나는 사례들을 모아 보겠다.
(3-a) 표훈대덕(表訓大德)이 경덕왕의 청으로 하늘에 올라가 아들을 청한 사례 <기이 하>
(3-b) 의상이 만난 종남산 선율사(宣律師)가 하늘의 공양을 받고, 제석궁에서 부처의 어금니를 받은 사례 <탑상>
(3-c) 보양(寶壤)이 서해 용궁으로 가 불경을 외우고 태조를 도우라는 부탁을 받은 사례 <의해>
(3-d) 망덕사의 승려 선율(善律)이 명부에서 돌아온 사례 <감통>
이러한 사례에서 승려가 출입하는 ‘다른 세계’는 하늘, 용궁, 명부로 다양하다. 또한 이런 이야기들은 대부분 통과적인 구조를 지닌다. 다른 세계로 도약(상승 또는 하강)했다가 돌아온 승려는 이전과는 다른 능력이나 사명을 지니게 된다. 그것은 (3-c)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3-c) 중국에서 법을 전해 받고 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해를 건너는데, 용왕이 그를 맞아 용궁으로 맞아들여 불경을 외우게 했다. 그리고는 금빛 비단으로 만든 가사 한 벌을 시주하면서, 아울러 자기 아들 이목(이무기?)을 내주어 그를 모시고 따라가게 했다. 보양에게는 이렇게 부탁했다. “지금 삼국이 소란해서 아직 불법에 귀의한 임금이 없지만, 내 아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서 작갑(鵲岬)에다 절을 세우고 지내면 적을 피할 수 있고, 몇 년이 지나기 전에 반드시 불법을 보호할 어진 임금이 나와서 삼국을 평정할 것이다.”
중국 유학을 끝내고 환국하는 시간, 그리고 중국과 신라 사이의 서해바다에서 이와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보양은 이 사건을 통해서 새로운 사명(고려 태조를 보좌하는 일)을 얻게 되었다. 그는 또한 용왕의 아들 이목을 부려 비를 내리게 하기도 하고, 이목이 자기 직분에 넘치는 일을 했다고 여긴 하늘의 사자를 기지를 써서 속이기도 한다. 그리고 태조를 신령한 지혜로 보좌하며 헌책을 하기도 한다.
다른 세계로의 샤먼적 도약을 통해 이 세상 밖의 지식을 얻는 것은 (3-d)의 사례에서도 나타나 있다. 망덕사의 승려 선률은 시주받은 돈으로 《육백반야경》을 이루려고 하다가, 공이 이뤄지기 전에 음부의 사자에게 잡혀 명부로 가게 되었다.
(3-d) 명사(冥司)가 물었다. “너는 인간 세상에 있으면서 무슨 일을 했느냐?” 선률이 말했다. “빈도는 만년에 《반야경》을 이루려고 했지만, 공을 이루지 못하고 왔습니다. 명사가 말했다. 너의 수록(壽籙)은 비록 다했지만 착한 소원을 끝내지 못했으니,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 경전 간행하는 일을 마치거라.”
이렇게 해서 다시 살아나게 된 선율은 돌아가는 길에 한 여인을 만난다.
“나도 역시 남영주의 신라 사람인데, 부모께서 금강사의 논 한 이랑을 몰래 취한 죄에 연루되어, 명부에 잡혀와 오랫동안 무거운 벌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스님께서 고향으로 돌아가시면 우리 부모에게 알려서, 빨리 그 논을 돌려주게 하십시오. 첩이 세상에 있을 때에 참기름을 상 밑에 묻어두었고, 곱게 짠 베도 이불 틈에다 감춰두었습니다. 법사께서 그 기름을 찾아 불등(佛燈)을 켜시고, 베를 팔아서 경폭(經幅)을 삼아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그 은혜를 황천에서도 갚을 것이고, 나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선률은 그녀의 집을 물어 환생한 후에 약속대로 그녀의 집에 찾아가 기름과 베를 찾아 한을 풀어준다. 이때 그녀의 혼이 찾아와 감사하는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놀라고 감탄해서 《반야경》 간행을 도왔다는 것이다. 죽은 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보통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지식(기름과 베의 위치)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경전 간행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용궁과 명부, 국왕보좌와 경전간행, 용왕의 부탁과 여인의 부탁 등 스케일의 차이는 있지만 두 이야기의 심층적인 구조는 동일한 것이다.
한편 가장 샤머니즘적 구도에 걸맞는 이야기는 (3-a)와 (3-b)의 천계 상승 설화이다. 두 설화는 엄밀히 말하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주술적 신통력’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 두 이야기 모두 얻고자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하늘, 특히 천제(제석)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천계로 직접 도약해 초월적 존재와 소통한다는 특징을 가지는 두 사례를 따로 분류하였다. 먼저 (3-a)에서는, 후사가 없던 경덕왕이 표훈대덕을 불러 상제에게 청해 아들을 두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3-a) 표훈이 올라가 천제께 아뢰고 돌아와 말했다. “천제께서 ‘딸을 구하면 되지만, 아들은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왕이 말했다. “딸을 바꿔서 아들이 되게 해주시오.” 표훈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서 청하자, 천제가 말했다. “그렇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아들이 되면 나라가 위태하리라.” 표훈이 돌아오려고 하자, 천제가 다시 불러 말했다. “하늘과 사람 사이를 어지럽게 할 수 없는데, 이제 대사가 이웃 동네 오가듯 하면서 천기를 누설하니, 이제부터 다시는 오가지 못하리라.”
또한 (3-b)에서는 의상이 하늘의 사자들에게 공양을 받는 종남산 지상사의 선률사를 만나고 있다. 선률사는 자신에게 공양을 하러 오던 사자들이 의상을 호위하는 신병(神兵)들 때문에 자신에게 오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 의상을 공경하게 된다. 나중에 다시 찾아온 의상은 조용히 선률사에게 말했다.
(3-b) “율사께서 이미 천제(天帝)의 존경을 받으셨는데, 내가 예전에 들으니 ‘제석궁(帝釋宮)에 부처의 이빨 40개 가운데 어금니 하나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을 위해서 천제께 청해, 그것을 인간 세상에 내려보내 복이 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율사가 뒤에 천사와 함께 그러한 뜻을 상제께 아뢰자, 상제가 7일 기한으로 의상공에게 보냈다. 의상이 예를 다해 맞아들이고, 대궐에 바쳐 봉안했다고 한다.
이상의 두 사례에서는 명백하게 샤먼적 도약의 특성이 나타나 있다.4) 또한 이와 같이 천계에 오르지는 않더라도 공중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사례 역시 보인다. <탑상>편의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조에 등장하는 정신왕(淨神王)의 아들 보천(寶川)은 영동(靈洞)의 물을 길어다 마시고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며 수행을 한다.
샤먼적 도약과 비행이 불교를 비롯한 인도종교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엘리아데가 『요가』 8장 7절에서 다루어 놓았다. 그에 따르면 엑스타시적 승천은 전세계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마법적 비행에 대한 상징의 아종이며, 이를 통해 도달하게 되는 하늘은 신성(神性)을 투사하고 있다. 비행술은 또한 불교 경전에 나타나는 네 가지 변형술(gamana) 가운데 첫 번째 능력이기도 하다.5) 또한 시베리아 샤머니즘 자체가 이러한 설화에 직접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불교의 전달 루트로 볼 때 시베리아적 요소는 충분히 삼국불교에 포함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나가는 글
삼국유사의 설화 속에 나타난 불교적 신통력의 사례에 대한 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다. 우선, 巫의 직능과 비교해 보았을 때, 신통력을 사용하는 승려는 무의 직능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치유 능력에 있어서 승려는 무와 경쟁관계였으며, 그 영험함에 있어서는 무를 능가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전쟁의 승리 등 특정한 이기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실행되는 무의 주술 역시 승려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즉, 무의 세 종교적 기능 가운데 사제적 직능과 치유자적 직능은 삼국시대 승려 역시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무의 예언자적 직능과 관련이 있는 초자연적 존재와의 접촉방법에 있어서 승려는 무와 차별성을 보인다. 무는 주로 빙의의 방법을 통해 초자연적 존재와 접촉을 하고, 예언이나 주술을 행하는 데 반해서, 승려는 탈혼에 가까운 샤먼적 도약을 하며 통과적 과정을 통해 같은 목적을 성취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巫라고 하는 토착적 종교직능자와의 비교를 통해 삼국시대의 승려와 그들이 사용했던 신통력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러한 신통력을 불교 자체의 맥락에서 바라보는 시도는 거의 하지 못했다. 붓다의 10대 제자 가운데 하나인 목건련에서 그 기원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피상적인 수준에 그쳤다. 이와 같은 한계는 불교 경전과 대중 불교전통에 대한 공부를 통해 채워나가야 하겠다.
1) 김승혜, 『동아시아 종교 전통과 그리스도교의 만남』, 영성생활, 1999, pp.84-103
2) 최종성, 「고려시대 종교전문가와 종교직능」, 『《고려사》에 나타난 종교문화의 연구』,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2002, p.53
3) 이윤경, 「여우의 이중성과 불교적 변신의 의미 - 『삼국유사』설화를 중심으로 -」, 『돈암어문학』12집, 돈암어문학회, 1999, pp.257-268
4) 이렇듯 천신이 강조되는 것 자체가 불교와 샤머니즘의 습합이라는 견해도 있다. 윤종갑, 「신라불교의 신체관과 영혼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한국철학논집』15집, 한국철학사연구회, 2004, pp.316-318
5) M.엘리아데, 정위교 옮김, 『요가 -불멸성과 자유-』, 고려원, 1989 pp. 315-319
<참고문헌>
M.엘리아데, 정위교 옮김, 『요가 -불멸성과 자유-』, 고려원,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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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 리가원․허경진 역, 『삼국유사』, 한양출판,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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