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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프로젝트/혁명을 기도하라

기독교인과 제사

명절이 다가오면 대다수의 교회에서는 설교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갑니다.


"여기 아직 제사 지내는 집 있습니까? 있으면 손 들어 보세요."


처음에는 눈치를 보던 사람들 사이에 몇 명이 쭈뼛쭈뼛 손을 들면,

곧 제법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듭니다.

한국에서 스스로 종교를 가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전 인구의 반쯤 되고,

그 가운데 절반이 불교인, 나머지의 절반쯤이 개신교인이니까

개신교인은 많아야 넷 중 하나.

그럼 온가족이 개신교인 집안은 확 줄어듭니다.

실제로는 손을 드는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저지르고 있거나,

거기에 가담하고 있는 게 되겠군요.

은혜로워야 할 예배 자리는 곧바로 정죄의 자리가 됩니다.

온갖 갈등을 헤치고 제사를 폐한 사람들은 의의 면류관이라도 쓴 듯 콧대가 높아지고,

다른 사람들은 죄책감과 상처를 얻게 되지요.



두 개 이상의 종교가 만날 때,

의례의 충돌은 사상이나 교리의 충돌보다 더 격렬합니다.

조선 시대 카톨릭이 본격적인 탄압을 받은 것은,

신자들이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폐지하고부터였습니다.


사실 여기에는 조금 더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마테오 리치를 필두로 하는 예수회 선교사들은

동아시아의 제사를 우상숭배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교의 사상과 의례를 존중하면서,

자신들을 西士, 즉 서양 선비로 칭했습니다.

유교를 철저히 연구해 유교의 언어로 그리스도교를 전했고,

교황청에도 제사를 조상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의식으로 보고했습니다.



<마테오 리치와 서광계>

출처 : 프레시안


그러나 명말청초에 예수회를 밀어내고 세력을 잡은 선교사들은

유교에 대해 배타적인 입장에 있었고,

제사를 우상숭배로 보아 금지하게 됩니다.

자생적, 주체적으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여 연구하던 조선의 신자들이

중국 교회와 접촉한 것이 이 시점입니다.

이 화끈한 젊은이들은 시키는 대로 조상의 "몸"인 위패를 불태웠고,

이후 100년이 넘게 이어지는 순교의 나날이 시작됩니다.


확실히 신념을 따라 목숨을 아끼지 않은 이들의 행동은 감탄스럽지만,

나는 이런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예수회의 것과 같은 선교정책이 계속 이어졌다면,

그래서 정약용과 같은 창조적인 사상가들이 카톨릭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동아시아와 서유럽이라는 두 위대한 문명은

좀 더 평화롭고 창조적으로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요.



결국 20세기 이후 카톨릭은 유교식 제사에 대해 상당히 온건한 태도를 가지게 되었지만

후발주자인 개신교는 이 문제를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약자여서 몰래 제사를 그쳐야 했던 조선시대 천주교와는 달리,

서구 세력을 등에 업은 개신교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1920년대의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기독교 집안으로 시집 온 며느리가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는 죄책감 때문에 자살한 사건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정말정말 이해 안 되는 일이지만,

당시의 제사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

기독교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건드리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천주교가 들어올 때도 강경파,

개신교가 들어올 때도 근본주의자.

들어오는 선교사들마다 이런 식이었습니다.


오늘날 모든 기제사와 차례 때에는

절을 하는 자와 안 하는 자, 못하게 하는 자.

제사음식을 만드는 자와 안 만드는 자, 못 만들게 하는 자

사이의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영화 <<밀양>>의 시장 아줌마들은 제사 안 지내는 거 하나만 보면

교회 다니는 것도 좋겠다는 말을 합니다.

실제로 제사 금지 교리는 교회를 다니게 하는 이유도 되고,

다니지 않게 하는 이유도 됩니다.


추석연휴와 주말이 겹친 2008년은 이런 전선이 더욱 확연하게 그어지는 자리였겠지요.

대부분의 교회가 차례가 이루어지는 시간에 아침예배를 드렸고,

몇몇 대형교회에서는 추석을 맞아 부흥회까지 연 모양이니까요.

이런 예배자리에서 어떤 설교, 어떤 기도가 이루어졌을지는 안 봐도 뻔합니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왜 기독교인은 유교식 제사를 지내면 안 되는 걸까요?

여러 가지 교리적, 역사적 문제가 얽혀 있지만

역사적인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정도로 접어두고,

성서적인 근거를 찾아보지요.

제사 반대에는 크게 두 가지 근거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둘 다 십계명에 들어 있는 이야기입니다.




1.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2. 너희는 너희가 섬기려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이 문제에 있어, 앞의 것은 강력한 근거고, 뒤의 것은 허약한 근거입니다.

왜 허약하냐면, 여기에서 문제삼고 있는 것은 구체적인 "이미지"로 만들어진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2번의 의미에서라면, 유교는 역사상 유래가 없을 만큼 우상 파괴적인 종교입니다.

실제로 조선 초에 불상과 무속화를 파괴한 것은 다름아닌 유생들이었습니다.

경주 박물관에 숱하게 널린 목 잘린 불상들은 일본인도, 기독교인도 아닌 유교인들의 소행인 것이 대부분입니다.

"아이콘", "이미지"에 반대하여 만들어진 의례의 대상이 위패고,

이 위패마저도 조상의 혼과 백이 깃드는 대상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신성해집니다.

따라서 히브리 성서에서 말하는 "우상"에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는 "피조물"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물건입니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형상". "모양"을 뜻하는 히브리어의 단어는

고대 오리엔트에서 조각, 그림, 혹은 왕이나 영웅 등의 형태로 표현된 "실제의" 신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 창세기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고 하면,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의 모습이고, 또 신이니까

자기들 손으로 만든 "가짜 신"들에게 비굴하게 숙일 필요없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예수도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신"이라고 하지요.

결국 만들어진 우상에 대한 금지는, 사람이 스스로 만든 것에 지배당해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인권선언"입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도 이와 연관지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 노예들에게 있어 "다른 신"이란 무엇입니까?

고대 사회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실 현대 사회도 완전히 분리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고대 사회의 경우는 양자가 "구분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옳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신"이란 이스라엘을 둘러싼 제국의 신,

제국의 통치 체제, 권력입니다.

기존 체제를 유지, 갱신해 주고, 왕권을 확립해주며,

그 말을 잘 따르기만 하면 풍요와 안정, 부와 전쟁의 승리를 약속해주는 신입니다.

한편 야훼는 노예와 떠돌이 용병인 히브리들의 신입니다.

고정된 영토에 머무는 신이 아니라,

광야로 내쫓는 신, 노마드의 신,

해방시켜 준다고 해 놓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쫄쫄 굶게 만드는 신이었지요.


하나의 신만 섬겨라는 것은

사실 어떤 신도 섬기지 말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눈에 보이게 만들 수도 없고, 그 이름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체계 밖의 신.

고대 사회의 상식으로는 보통 이런 것을 "신"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야훼는 차라리 "익명의 신성(神性)"입니다.

바울이 아테네에 갔을 때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되어 있는 빈 제단을 두고,

"이것이 내가 말하는 하나님이다"라고 하지요.

한국에서 굿을 할 때, "뒷전"이라고 해서,

이름도 없는 잡귀잡신들을 위한 상을 하나 차려줍니다.

귀신 중에서도 떠돌이, 거지, 머슴들인 셈인데

바울이 한반도에 왔다면, 분명 뒷전을 가리키며 히브리의 신인 야훼를 전파했을 겁니다.

라파엘로, <아테네에서 설교하는 바울>



소위 말하는 하나님이란 신 아닌 신.

신을 넘어서는 어떤 것입니다.

다석 류영모의 제자들은 그래서 하나님을 "니르바나(열반)님"이라고도 하더군요.

니르바나는 공(空, sunyata)을 겪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님"을 붙여놓으니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런게 하나님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그 일부나마 발견되는

압도적인 無,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거기서 느껴지는 사랑과 자비.

실재 그 자체를 굳이 이름붙여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는 소박한 고백을 내 언어로 해석해 본다면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지 마라"가 되겠습니다.

예수는 같은 것을 자신의 언어로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당신들은 돈의 신(맘몬)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무관심한 예수가 지목한

단 하나의 우상이 바로 저겁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오늘날의 한국사회와 마찬가지로 돈의 신에 미쳐있었던 겁니다.



엄청 많이 돌아왔지만, 다시 제사 얘기를 하겠습니다.

나는 명절 차례 상 앞에 모인 사람들이

평소에 별로 기억하지도 않는 조상을

“하나님처럼” 모시고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습니다.

한편 아래 설교를 보십시오.




http://www.youtube.com/watch?v=WyMeUvitZb0

 



어느 쪽이 우상입니까?


이 사람들은 도대체 뭘 믿고 있는 겁니까?


하나님의 자리에 돈의 신을 앉혀 놓고 매주, 매일 경배하는 사람들이

일 년에 몇 번 조상을 떠올리는 의례를 두고

서양식이 아니라고,

기독교식이 아니라고,

우상숭배라고 정죄를 하고 있는 겁니다.


형식이 문제라고도 합니다.

“절”이라는 자세는 고대 오리엔트의 신들에 대한 “경배”와 흡사합니다.

그래서 추모예배로 바꾸자고도 합니다.

그러나 공동식사의 형태였던 성찬식이 성직자 중심의 제사 형식으로 바뀐 것은

고대 지중해, 특히 로마의 희생제사 형식을 따온 것입니다.

의례에 당시의 문화가 묻어나는 거야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사람이 만든 것과 하나님에게서 온 것을 왜그리도 구분하지 못하는지.




뭐,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여전히 많은 교인분들은 앞으로도 제사상에 절을 하지 않거나,

찜찜해하면서 절을 하겠지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는 로마서 14장에 있는 바울 선생의 말을 전해드립니다.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 부정한 것은 없고, 다만 부정하다고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부정한 것입니다”(14절)


“그대가 지니고 있는 신념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간직하십시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를 정죄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22절)



돈과 권력의 신 대신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은 향 피운 상에 절 몇 번 하는 것 정도로 결코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결국 행위가 아닌 믿음이 우리를 구원할 겁니다.












덧붙이기- 제 의도는 유교식 제사를 미화하거나,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제사 안 지내도 되니까 교회 다닌다는 말까지 있겠습니까.

조상의 위패는 우상이 아닐 수 있지만,

가부장제는 우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아무리 “추모예배”로 형식이 바뀐다고 해도

음식 장만이니 뒤처리니 다 여성들에게만 맡긴다면

그건 전혀 그리스도교적이 아닙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보세요!)




2008. 9. 16.

불거토피아 http://cafe.daum.net/bgtopia/

일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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