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템과 터부: 서문> (1913)
『토템과 터부』에 실린 네 편의 논문들은 민족 심리학의 난제들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작업이 빌헬름 분트와 취리히 정신분석학파(칼 융의 학파)를 비판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이 시기는 학문적 동지였던 프로이트와 융이 미국 여행 이후 결별한 직후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는 1913년 5월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책은 내가 쓴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가장 뛰어난 책이, 어쩌면 최후의 훌륭한 책이 될 거 같은 느낌이 드네. (…) 이 책은 국제학회 전에, 『이마고』 8월호에 발표될 것이고, 아리안적이고 종교적인 모든 것을 끊어내는 데 기여할 것이네.” 1
<토템과 터부: 근친상간 기피 심리> (1912)
프로이트는 당시에 가장 단순하고 원시적인 문화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 대한 민족학적 보고에 주목한다. 2 서구인의 관점에서는 도덕관념이 희박하고 성적 본능에 충실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들이 의외로 근친상간 방지에 대단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회는 토테미즘을 통해 구성되어 있는데, 동일한 토템에 속해 있는 구성원끼리는 성관계를 가질 수 없다. 금제를 범하는 것은 마치 공동체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행위인 것처럼 취급되어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잔혹한 보복을 당한다. 또한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없더라도 토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은 모두 혈연관계로 처리된다. 토테미즘과 족외혼 제도는 사회적 분류 체계에 따른 복잡한 규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프로이트는 이런 현상에 대해 “어쩌면 그들은 근친상간의 유혹이 신변을 떠나지 않았기 떄문에 그 유혹에 대한 충분한 대응 방안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42> 조르주 바타유가 『에로티즘』에서 “금지되었기 때문에 욕망한다”고 말했다면, 여기서 프로이트는 “욕망하기 때문에 금지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논문의 후반부에서 프로이트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혈족관계만이 아니라 장모-사위와 같은 인척관계의 성관계에 대한 금기다. 혈족관계의 근친상간 금지 풍속은 직접적인 것이고, 의식적인 것이지만, 인척관계의 경우는 “무의식적 중개물을 통해 매개되는 환상적 유혹” 때문이라는 것이다. 3<52>
이 장에서 프로이트는 자신이 새로운 발견이나 관점을 제시한 것이 거의 없다고 이야기한다. 단, 원시인에게서 발견되는 이와 같은 현상이 ‘유아기적’인 것이며, 신경증 환자의 정신현상과 일치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토템과 터부: 터부와 감정의 양가성> (1912)
프로이트는 폴리네시아 어의 ‘터부’가 상반되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것은 ‘신성한’, ‘성별된’ 것이라는 의미와 ‘위험한’, ‘금지된’ 것이라는 양가적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4 ‘터부’의 반대말은 ‘노아’, 즉 ‘보통의’, ‘누구에게나 접근이 가능한’이라는 말이다. 즉, ‘터부’란 신성해서든 더러워서든 범접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터부는 다양하고 모호한 현상인데, 원시인들은 이런 금제들의 이유도 모르고, 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금제를 범하면 무서운 벌을 받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터부는 사물만이 아니라 사람, 장소, 사물, 특정한 상황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이런 금제는 이런 대상은 위험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거기에 접촉하면 마치 전염되는 것처럼 옮겨진다는 이론 때문에 더욱 개연성을 얻는다. 5 프로이트는 이런 터부가 현대인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즉, 모든 종교보다 선행하는 터부 현상이 칸트가 말하는 ‘정언명령’의 기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빌헬름 분트는 터부의 근원이 악마적 권능에 대한 인류의 근원적인 두려움에 있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심리학에서는 두려움도 악마도, 더 이상은 환원이 불가능한 ‘가장 오래된 것’일 수 없다. (…) 신들이 그렇듯이 악마라고 하는 것도 사람의 마음이 빚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63>
여기에서 프로이트는 다시 신경증 환자의 강박 행동과 터부 사이의 비교를 시도한다. 그러나 양자의 유사성이 본질적인 관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도 인정하고 있다. 즉, “자연은 생물학적으로는 아무 연관도 없는 현상에 동일한 형식을 부여하기를 즐기는 모양”이라는 것이다. <65>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는 상호 비교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터부와 강박 신경증 사이의 일치점은 다음과 같다. “1) 금제에 동기가 없다는 점, 2) 내적 강제에 의해 금제가 확립된다는 점, 3) 쉽게 이전된다는 점, 금지되는 대상을 통하여 전염될 위험이 있다는 점. 4) 제의적 행위, 즉 금제에 기초한 계율을 발생시킨다는 점.” <68>
강박 신경증의 원인에 대한 논의는 앞서 논문과 다르지 않다. 즉, 유년기에 일어나는 본능에 대한 억압이 금제를 발생시키고, 무의식으로 밀려난 본능은 금제와 지속적인 갈등에 놓이게 된다.
여기에 양가성에 대한 설명이 추가된다. 아이는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싶다(만지고 싶다). 그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할 수 없다. 그래서 아이는 그것을 혐오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본능과 금제를 서로 독립되어 있는 두 세력 사이의 갈등처럼 묘사한다. “이 양자(…)가 이미 각각 정신생활 속의 일정한 부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도저히 합류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70> 6
억압의 결과 금제는 인식되지만 금제의 이유는 망각되어 버린다. 그리고 욕망은 은폐되어 있지만 약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충동적인 욕망은 끊임없이 금지된 것의 대용물을 찾아 전위, 확장된다. 이에 대응하여 금제도 더욱 강화된다. 강박 행위는 이 두 세력의 긴장을 방전시키기 위한 절충안이다. 강박 행위는 한편으로는 후회나 속죄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금지된 행위에 대한 욕망을 보상받으려는 행위다.
프로이트는 강박 행위에 대한 이와 같은 이론을 터부에 적용한다. 강박 행위의 원인이 무의식적인 것처럼, 원시인들은 금제의 유래에 답할 수 없다. 터부에 대한 금제가 태고적부터 사회적으로 대물림되는 것은 금지된 것에 대한 원초적 욕망 때문이다. 그들은 욕망의 대상(터부)에 대해서 양가적 태도를 가진다. 터부는 범하고 싶지만 범하기에는 너무나 무서운 것이다.
또한 프로이트는 분트가 지적한 현상, “터부를 범한 사람은 스스로 터부가 된다”<73>는 사실에 관심을 가진다. 터부를 범한 사람을 보면, 다른 사람도 그것을 모방할 수 있다. 이것은 공동체의 와해를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이다. 그러므로 터부를 범한 사람은 전염성이 강한 위험인물이 되어 기피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7 터부의 위반은 오직 권리의 포기를 통해 속죄될 수 있다.
프로이트는 본격적으로 터부와 강박 행위를 비교하기 위해 터부에도 강박 행위에서와 같은 양가성이 나타나는지를 검토한다. 그 대상은 적과 관련된 터부, 수장과 관련된 터부, 죽은 자와 관련된 터부이다.
전쟁이나 전투 상황에서 원시인들은 적에 대한 적의만이 아니라 적에 대한 찬양이나 적을 죽인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표현한다. 전투에서 승리한 전사는 부정한 존재로서 사회에서 격리된다. 또한 지배자는 신비하고 위험한 힘을 가진 것으로 상상된다. 왕의 접촉은 치유력도 가지고 있고, 위험하기도 하다. 그리고 백성은 왕을 존경할 뿐만 아니라, 불신하고 경계한다. 이것은 왕을 둘러싼 갖가지 제약들로 표현되는데, 프로이트는 이런 태도가 특정인에 대한 피해망상 증상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죽은 자에 대한 태도는 양가적 특징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다. 아무리 사랑하던 자라도 죽으면 악령이 된다. 죽은 자가 해코지를 할 수도 있다는 느낌은 의례적 조치를 통해서 적합한 방식에 따라 시체를 처리한 다음에야 완화된다. 8프로이트는 이것이 살아 있는 사람이 고인에게 느끼는 애착과 적의 가운데 적의가 죽은 자에게 투사된 결과라고 보았다. 즉, 살아 있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악감정을 품고 죽이고 싶어 한다. 죽음이라는 극적인 상황에서 사랑의 감정이 애도를 통해 최고조에 이르면 잠재되어 있던 적의도 분출된다. 그러나 이 감정은 죽은 자의 영혼에게 투사된다. 그래서 죽은 자의 유령이 자신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타난다. 9
마지막 절에서 프로이트는 신경증과 터부의 비교를 양심, 죄의식만이 아니라 예술, 종교, 철학과 같은 사회적 소산에 대한 설명과도 연결시킨다. 신경증에서 금지된 것은 성적인 것이다. 반면 터부에서 금지되어 있는 것은 사회적인 충동이다. 그러므로 신경증은 성적 충동이 사회적 충동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히스테리는 예술 창조, 강박 신겨응은 종교, 편집증은 철학 체계의 왜곡된 결과다. 신경증은 “집단적인 노력을 통해 사회적으로 성취시켜야 하는 것을 개인적인 수단을 통해 스스로 성취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신경증이 지니는 이러한 비사회적 본질은, 불만스러운 현실로부터 쾌적한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려는 근원적인 경향에서 유래한다.” <129>
- 플로리안 일리스, 한경희 옮김, 『1913년, 세기의 여름』, 문학동네, 2013. 이 서문이 작성된 1913년 9월은 정신분석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융 학파와 프로이트 학파가 최초로 충돌한 자리였다. [본문으로]
- 비슷한 시기 뒤르켐이 『종교생활의 기본 형태』 (1912)에서 이 지역을 다룬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본문으로]
- 프로이트는 딸에 대한 장모의 감정 이입, 사위의 오이디푸스적 욕망의 전이 등을 이 현상의 무의식적 동기로 지목하고 있다. [본문으로]
- 프로이트는 터부가 라틴어 사케르(sacer)와 같은 의미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성스러운’을 의미하는 현대 영어의 'sacred'의 어원이다. 한편 조르조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라는 말이 ‘신성한 인간’인 동시에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 인간’으로 이해되기도 했다는 점으로부터, 성스러움의 양가성과 그 법적, 정치적 의미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켰다. 조르조 아감벤, 박진우 옮김, 『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 새물결, 2008[1995.] [본문으로]
- 이것은 최근의 인지종교학적 이론과도 관련된다. “그 (전염) 체계는 보이지 않는 오염물질과의 접촉에 대한 공포와 주로 관련된다. 그것은 다른 마음체계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특별한 원리를 따른다. 그 체계는 탐지할 수 없더라도 오염의 원천이 거기 있다는 것, 그 원천과의 모든 접촉유형이 오염물질을 전파시킬 수 있다는 것, 오염물질의 '용량'이 많은지 적은지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것을 명시한다.” 파스칼 보이어, 이창익 옮김, 『종교, 설명하기』, 동녘사이언스, 2015, 358-359. [본문으로]
- 프로이트의 이와 같은 묘사는 마음이 각각의 특수한 영역을 담당하는 독립적인 추론체계(모듈)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현재의 인지과학의 관점과 통하는 점이 있다. [본문으로]
- 이 "모방 욕구"에 대한 문제는 나중에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의 핵심이 된다. [본문으로]
- 이렇게 되면, 일반적으로 죽은 자는 개체성을 잃고 집단적인 ‘조상’으로 상상된다. 이 경우 개체적인 영혼일 때보다 감정의 양가성은 현저하게 약화된다. [본문으로]
- 파스칼 보이어는 지인의 죽음 상황에서 나타나는 독특하고 다양한 감정들이 시체에 대한 인지적 분열(cognitive dissociation)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마음의 유생성 체계는 시체를 생명이 없는 대상으로, 전염 체계와 포식 체계는 위험한 대상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사람파일 체계는 계속해서 그를 자신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사람으로 표상한다. 서로 다른 체계들이 동시에 추론을 생산하면서 이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는 것이다. 파스칼 보이어, 『종교, 설명하기』, 372-37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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