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김성례, “무속전통의 담론 분석: 해체와 전망”
(《한국문화인류학》 22, 1990.)
한 승 훈
김성례는 레이몬드 윌리엄스의 “선택적 전통(selective tradition)” 개념을 빌려, 무속을 종교적 현상 자체로서보다는 “역사의 모순이 전개되고 드러나는 하나의 문제틀로서 접근”하겠다고 밝힌다. 다시 말해 어떤 역사적 조건 속에서 무속을 ‘전통적’이라고 하는 인식이 형성되었는지 살피고 그 담론의 양식들을 해체하겠다는 것이다. 이때 해체란, “당연하게 느끼고 사고하는 것을 멈추고 그 인식들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무엇을 표상하는가를 규명하는 일”이다. 무속전통은 공간적으로는 한국 문화의 기층(base)에, 시간적으로는 그 기원(origin)에 위치하고 있는 원형적 전통으로서 이미지가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신비스럽고 순수한 대상을 의미하는 이 전통으로서의 ‘무속’은 역사를 ‘현재적’ 감각으로 각색한 것으로, 무속에 대한 우리의 실제 경험과 어긋난다. 무속전통은 과거의 것이라기보다는 최근에 창안된 것이다.
기존 무속 연구에서 지배적인 담론은 식민담론과 민족담론이었다. 이들은 모두 무속을 한국 문화의 독자성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담론전략을 가진다. 김성례는 식민담론의 대표적인 예로 아키바 다카시의 무속연구를 들고 있다. 아키바는 한국무속의 ‘농촌성’, ‘여성적 혹은 모성적 성격’, ‘원시성’ 등을 강조하며, 한국무속과 한국사회를 가족주의적이고, 정체되어 있으며, 보수적인 성격으로 규정짓는다. 김성례는 이것이 무속의 사회적 기능으로부터 한국을 농촌형 동질적 사회집단으로 간주하여, 그 민족국가로서의 실체를 부정하는 타자화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평가한다.
한편 1920년대 최남선, 이능화, 손진태 등은 식민 담론에 대항하여 한국 문화의 독자적 기원과 발전을 모색하였다. 이들은 유교전통을 근대적 개혁의 장애물로 본 구한말 민족주의 전통에 따라 유교적 양반문화를 거부하였다. 대신 단군신화, 무속 등이 가장 순수하게 민족적인 것으로 부각된다. 당시 민족주의자들 가운데에는 민속을 비과학적 미신이며 타파의 대상으로 보는 이광수와 같은 인물도 있었지만, 이를 고유의 민족 상징의 보고(寶庫)로 평가하는 문화적 민족주의자들도 있었다.
김성례는 식민담론과 민족담론 모두가 “식민주체를 어떻게 표상하며, 즉 타자화하며 그것을 어떻게 무속전통과 결합시키느냐라는 전술적 문제에서 의외로 타협적인 관계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있다. 민족담론은 담론의 권력관계라는 면에서는 식민담론의 모방(mimicry)이었다는 것이다. 식민담론의 권위는 한국 사회 전체를 ‘무속적=농촌형’으로 타자화해, ‘무속적인 한국’을 문명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민족담론은 타자화된 사회유형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독립을 위한 대체 이데올로기로 선택한다. 일례로 최남선이 무당을 조선 문화의 상징으로 내세운 것은 일본 신도의 영향이었지만, 일본인이 천신의 자손인 것처럼 한국인도 단군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식민담론의 권위를 거부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손진태의 민중생활사 역시 야나기타 구니오의 향토생활 연구의 영향을 받았지만, 야나기타의 그것이 일본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결합하였다면, 손진태는 이에 저항하는 힘의 저변을 탐색하였다는 것이다.
글의 후반부에서는 해방 이후의 무속 담론에 대해서도 유사한 방식의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해방 이후 무속 연구자와 대상의 관계는 ‘보호주의적’인 것이었다. 민속학 연구자들은 ‘문화재 위원’으로서 무속의 잔존물을 발굴, 보존, 재현하는 무속문화의 보호자, 장려자, 책임관리자로 자처하였다. 이에 대해 몇몇 무당들은 그 전문가들의 권위에 의존하여 인간문화재로서의 명예를 얻으려 했고, 그들에 준하여 무속전통의 전형성, 원형성이 구성되었다.
한편 이른바 “민중문화운동론자”들은 무속연구를 연구자의 “자주적 가치관”을 정립하는 의식개발로 보고, 무속연구자와 무속전통의 전유계층인 ‘민중’을 이념적으로 동일시함으로써, 무속 전토을 민중 저항세력의 기반으로 재창조하려고 하였다. 이는 한국 문화의 ‘고유성’을 무속에서 추구했다는 점은 관제 민속운동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에 의한 민족문화의 재현이 문화재를 박물화하여 독립된 민족국가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이었다면, 민중문화운동은 저항문화의 ‘민중적 순수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동체 전체의 이상향을 무속에서 찾으려 한 것이었다.
이 두 가지 담론이 충돌한 사건이 김성례의 논문이 발표된 1990년 당시 이윤택과 이상일의 논쟁이었다. 당시 민중연희패나 문화운동론자들은 무속을 저항적 이념을 추구하는 마당굿-정치극 형태로 재창조하려 하였고, 이에 대해 민속학자들은 무속을 무당의 영역에 있는 그대로 놔둬야 한다고 맞섰다. 김성례는 이 논쟁의 양측 모두가 무속 ‘전통’의 순결성에 대한 동일한 주장이라 평가하고 있다. 무속의 순결성에 대한 주장은 무속에 역사적, 문화적 ‘차이성’을 부여하여 현대문명에 대해 토착적, 한국적, 민중적 특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대성과 순결성을 강조하면서, 역설적으로 무속은 이와는 반대 의미의, 현대 상황에서 분리된 ‘이국적’, ‘환상적’인 문화적 범주로 재창조되었다. 한마디로 무속의 전통은 본질적이라기보다는 상황과 시기에 따라 가변적이다.
마지막 장에서 김성례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제는 이미 사라진 문화질서에 매달리기를 멈추어야 한다. 다른 시대의 재현을 멈추어야 한다. 과거의 상실을 애도하는 의식을 멈추고 파편화된 주체가 현존하는 삶의 현장에 눈을 돌려야 한다. 모방의 기술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반사적인 거울을 만들기보다, 헤게모닉 담론에 대한 대항 담론을 반복하여 창출(invent)하기보다 무속의 전통성에 관한 담론 자체를 해체, 탈신비화하고 낯설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속전통의 진실성-민족적이든 민중적이든-은 하나의 픽션이다.” 다시 말해 무속의 연구 대상은 이미 ‘전통’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의 원류’나 ‘현대사회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대안’, ‘농민 사회를 모델로 한 상상의 공동체’ 등을 추상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을 멈추고, 무속의 동시대성(contemporaneity), 즉 실제 무속현상과 문화를 구성하는 사람들과 일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포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연구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문화해석학(cultural interpretation)이다. “연구자가 문화서술의 특권적 권위의 베일을 일단 벗고 무속을 만드는 주체들의 생활세계에 눈을 돌렸을 때,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지 않고 안으로부터 보이는 대로 문화를 기술”하는 문화해석학이 그 변화의 상황을 인식하게 해 주리라는 전망이다.
2015.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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