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발제

『서유견문』에서의 예수와 연금술

 1895년에 나온 유길준의 『서유견문』의 종교 부분을 읽는데 생각보다 자세하고 재밌다. 불교, 이슬람,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선주민 종교까지도 다루고 있다. 특히 예수에 대한 부분은 묘하게 왜곡된 정보인데 외부인의 관점에서 보면 저렇게 보이겠구나 하고 납득이 가기도 한다. (번역은 허경진 역, 서해문집, 2004 기준)


나님이 이 세상에 도가 없는 것을 긍휼이 여겨 자기 아들을 내려보내 가르침을 베풀려고 하였는데, 천신의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 나타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기의 정기를 동정녀 마리아에게 내려보내 사람의 관계가 없이도 임신하게 하였다. 그가 한 아들을 낳으니, 이가 바로 예수다.

그가 가르침을 펼치는데, 그 말씀이 고명하고 술법도 신기하였다. 눈먼 자가 눈을 뜨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기도 하여,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행하였다. 그래서 제자들이 나날이 많아지고 다달이 늘어가, 가는 곳마다 따르는 자들이 구름 같았다. 그가 종교를 설립하고 말하길,
"예수교를 믿고 따르는 자는 죽은 뒤에 천당에 올라가 끝없는 복락을 누린다. 그러나 믿고 따르지 않는 자는 지옥에 들어가 끝없는 고통을 받는다" 
라고 하면서 그 절대적인 권리를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하였다. 예수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교에서는 또 말하기를,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다른 신이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혼자 개신다. 세상 사람들이 받드는 귀신들은 모두 허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예수는 또 인생의 행실에 대해서도 설교하며 각국을 돌아다녔는데, 그의 무리들이 너무 많아지자 임금이 시기하여 십자가 위에서 못에 박혀 죽는 화를 당하였다.


 예수의 기적을 '술법'이라고 부른다거나, 예수가 '종교를 설립'했다고 한다거나, 그 종교를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예수가' 말했다고 한다거나 하는 건 재밌는 오해다. 

 그 외에도 프로테스탄트를 '항거당'이라고 부르고, 가톨릭은 항거당 반대니까 '복종당'이라고 부른다거나, 퓨리턴은 '청정당'이라고 옮기는 것도 그럴 듯한 번역이다.

그리고 종교 항목에 나온 건 아니지만 로저 베이컨의 과학적 업적을 얘기하는 부분에서 이런 서술도 보인다.


그러나 이 무렵은 아직도 몽매한 시대여서 이러한 대학자도 신선이 되는 황당한 도를 신봉하여 연단법에 공력을 허비했으며, 또 별이 오가는 궤도를 가지고 사람의 길흉을 판단하는 오괴한 이론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연금술과 점성술을 얘기하는 건데, 이걸 신선이 되는 연단술로 이해하고 있다ㅋ 지금의 통속적인 과학사에서 "연금술=다른 금속을 금으로 만드는 것=화학의 조상" 정도로 가르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물론 중세 연금술의 신비주의적 성격을 생각하면 저게 훨씬 사실에 가까운 이해긴 하지만.


(2014. 4. 28.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