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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프로젝트/조선후기 반역자들의 종교

엥겔스의 '종교적 외피론'과 한국종교사 논문 한 챕터에서 다룰 내용이라 이 참에 꼼꼼하게 공부해 보자 하는 생각으로 이틀째 엥겔스의 이랑 을 읽고 있다. 전근대 반란 해석에 흔히 인용되는 이른바 '종교적 외피론'에 대한 것이다. 독일어에 약해서 1926년의 영역본이랑 1988년의 한국어역본을 대조하면서 보는데 여러 모로 느끼는 게 많다. 흔히 '종교적 외피론'은 반란에서 계급적 요구와 종교적 표현을 분리해서, 종교적 표현은 시대적 한계 또는 대중동원을 위한 '껍데기'일 뿐이었다는 주장으로 이해되곤 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종교색이 강한 전근대의 반란은 진정한 혁명이 될 수 없었고, 보다 철저한 유물론과 계급의식으로 대체되어야만 했다. 이것은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의 구분이나 종교를 허위의식으로 파악하는 등 마르크스주의의 표준적인 전제들을 혁세적.. 더보기
드루킹 사건과 조선시대 변란 나는 인터넷 그런 거 별로 안 하는 사람이라 드루킹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그런데 "드루킹"이라는 이름이 귀에 익어서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방금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2년 정도 전이었던가 예전에 발표한 내 논문을 참고해야 할 일이 있어서 검색을 했는데, 어느 블로그에 내 논문 구절들이 몇 페이지분량이나 인용되어 있었던 것이다. (무단전재는 아니었고 제대로 참고문헌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 블로그의 이름이 분명 "드루킹의 자료창고"였던 거 같다. 지금 다시 검색해 보니 안 잡히는 걸로 보아 틀림없는 듯 하다. 아직 다른 연구자들에게 인용된 적도 없는 듣보 마이너 논문이 학술논문도 아니고 개인 블로그에서 언급되는 것이 반갑고 신기해서 한참을 읽어보았다. 그러나 곧 포기하고 말았다. 그 게시글.. 더보기
동학농민군의 전쟁주술 19세기 변란 자료 정리하다가 논문 범위도 아닌 동학농민전쟁 부분이 너무 재미있어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동학군은 달아나고 싶으면 달아날 주(走) 자를 써서 손에 쥐고, 날고 싶으면 날 비(飛) 자를 써서 손에 쥔다. (...) 맑은 날에도 구름 운(雲) 자를 써서 날리면 비가 온다." -천도교중앙총부 교사편찬위원회, 『천도교백년약사』 상 (1981) 이거 그거잖아. 마법 천자문... 또, 동학군이 주술을 써서 관군의 총탄을 막았다는 전설이 있는데, 세상에 이게 당시 기록에도 남아 있었다. 주한일본공사관 문서에 포함되어 있는 전라도 지역 동학군의 심문기록이다. (한국측 자료에는 안 남아 있는 거 같다.)그래서 번역해 보았다. 은밀히 왕래하는 동학도 수십 명을 잡아서 진술을 받았다.그들이 말했다. ".. 더보기
유민(流民)과 유민(遊民) 조선후기에는 유민(流民)과 유민(遊民)이 모두 늘고 있었다. 유민(流民)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정착 공동체에서 벗어나 방랑하는 사람들이었고, 유민(遊民)은 물려받은 토지와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이었다. 계층으로 따지면 전자는 하층민이고, 후자는 특권층이었지만, 19세기 이후에는 흥미로운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방랑하는 유민(流民)들 가운데에서 자신이 선비라는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났고, 이들은 놀고먹는 유민(遊民)들을 양반 엘리트로 인정하지 않았다. 19세기의 "민중운동"들을 이끌었던 이른바 "몰락양반"들 가운데 다수는 따지고 보면 신분적으로는 전혀 양반이 아니었음에도 자신들에게 천하 사람들을 위한 공적인 책임이 있다고 느꼈다. 어떻게 보면 과대망상이고, 다르게 보면 정치적 주체로서의 각성이었던 .. 더보기
"정씨 진인"의 번역 『정감록』 같은 도참비기에 나오는 "진인(眞人)"은 영어로 옮기기 참 거시기하다. True man 같은 걸로 하면 미국 대통령 같고, immortal이라고 하면 도교적 의미만 있고 그 정치적 맥락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정씨 진인"을 "Genuine Chŏng"으로 옮겨 놓은 글을 봤다. 진심으로 천재적이라고 느꼈다. 2017. 9. 21. 페북. 더보기
왕을 저주한 조선의 공주 박사논문에서 다루는 "역적"들 중에서 신분은 가장 높은데 나이는 가장 어린 사람이 있다. 인조의 늦둥이 딸로 효종의 이복동생인 효명옹주다. 시아버지 김식이 1651년에 반란 계획을 세울 때, 무당도 부르고 불상도 만들고 하면서 열심히 왕을 저주하다가 걸린 탓에 종교학 논문에 이름을 싣게 된 인물이다. 당시 나이가 14, 5세 정도였다. 저주란 게 어떤 거였냐면, 벼락 맞은 나무, 무덤 위의 나무, 태어난 지 7일이 지나지 않은 아기의 배냇저고리, 고양이 새끼 시체 말린 것(...), 흰 병아리 시체 말린 것(...), 죽은 아기의 머리와 두 손(...;;;) 등의 재료를 숙련된 무당이 조합해서 만든 가루를 왕의 침실에 뿌리는 거였다. 그 외에도 불상을 만들어서 부처 뱃속에 저주의 글을 집어넣는 것도 있었.. 더보기
1690년 조선의 반란 계획서 규장각엔 신기한 고문서들이 많이 있다. 이건 1690년에 홍충선(洪忠善)이라는 사람이 당시 우의정이던 김덕원(金德遠)의 집에 던져넣은 익명의 투서다. 내용이 워낙 ㅎㄷㄷ해서 실록에도 "차마 입에 올리지도 못할 흉악한 역모에 대한 내용"이라고만 언급되어 있는데, 이렇게 실물이 남아 있었다(사진은 영인본임.) 보내신 편지를 삼가 받으니 마치 위로가 되는 듯합니다. 편지에서 하신 말씀은 충청 병사, 강계 부사, 안변 부사가 즐겨 따르겠다고 한다는 것이니 기쁘고 다행스럽습니다. 두 김씨 점쟁이에게 물어보니 점을 쳐보고는 “올해 4, 5, 6 이 세 달 사이에 국운(國運)이 크게 쇠하고 왕과 왕의 아들이 극흉(極凶)한 시기에 들어가니 또 다행스러운 일이다. 날짜를 고르자면 4월 25, 5월 초가 길하고, 6월 1.. 더보기
정치인류학이 나에게 던져주는 문제 몇 가지 1. 강제적 권력, 국가의 발생은 사회계층의 분화와 불평등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그 혁신에 대해서는 강력한 저항이 일어난다. 정치권력의 발생과 분화, 그로 인한 사회적 힘들의 투쟁은 종교권력의 장에서도 일어난다. 정주공간 내에 있으면서 사회와 분리된 힘의 장소로서 존재하는 성전과 그 체제를 유지하는 사제, 그를 통해 합법화되고 성화된 폭력을 독점하며 행사하는 왕, 그리고 그 체제를 초과하는 권위를 주장하며 그에 도전하는 예언자. 2. 어쩌면 아나키즘은 서구 근대의 산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히브리성서의 역사서들은 왕실사가에 의한 국가 발생의 신화와 그에 저항하는 예언자들의 신화가 동시에 발견된다. 그들의 담화는 투피-과라니족의 예언자인 ‘카라이’들과 같이 기존 세계의 부정과 타락을 고발하고, 그로부터 이탈.. 더보기
조선후기의 술사 주비朱棐 이야기 최근 안식년을 맞아 캐나다의 UBC에 다녀오신 선생님은 거기서도 몇 개의 세미나를 굴리셨다고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조선후기의 홍만종(1643~1725)이 쓴 읽기였다. 단군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 선인, 이인, 술사들에 대해서 기록해 놓은 건데 마침 번역본도 나와 있길래 찾아보았다. 신선전이나 열선전 수준의 해괴한 이야기들을 기대했지만, 확실히 그런 것보다는 밋밋했다. 대신 어떤 인물이 내 눈을 끌었다. "함경도의 벼슬하지 않은 선비"라고 소개된 주비는 송시열 밑에서 공부한 바 있는 유학자였다. 송시열은 그는 유교 이외의 술수에도 능해서 한 순간에 천 리를 갈 수 있었고, 그의 제자인 정두남은 저주 걸린 집에 서려 있는 악한 기운을 퇴치하고, 매흉(남을 저주하기 위해 흉한 물건을 묻는 것)한 장소를 찾.. 더보기
『정감록鄭鑑錄』의 경쟁 『정감록鄭鑑錄』이라는 건 대략 18세기 초의 기록에서부터 등장하는 도참서圖讖書 가운데 하나입니다. 도참은 세계나 국가 등의 미래에 대한 동아시아적 예언으로, 이런저런 종교적 요소가 풍부하게 담겨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원래 정감록은 이런 수많은 도참서 가운데 하나였으나, 나중에 워낙에 유명해지는 바람에 도참서 자체의 대명사처럼 되었습니다. 다음 오늘날 학자들이나 호사가들이 이용하는 『정감록鄭鑑錄』의 대본은 대개 20세기 초에 출판된 것들입니다. 1913(大正2)년에 아유가이 후사노신鮎具房之進이 “총독부 학무과 분실에 있는” 『정감록』과 『무학기無學記』를 필사하고 해제를 달아 놓는 등 일찍부터 조선의 도참서는 일본인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습니다. (백승종, 『한국의 예언문화사』, 푸른역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