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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프로젝트/조선후기 반역자들의 종교

왕을 저주한 조선의 공주

박사논문에서 다루는 "역적"들 중에서 신분은 가장 높은데 나이는 가장 어린 사람이 있다. 인조의 늦둥이 딸로 효종의 이복동생인 효명옹주다. 시아버지 김식이 1651년에 반란 계획을 세울 때, 무당도 부르고 불상도 만들고 하면서 열심히 왕을 저주하다가 걸린 탓에 종교학 논문에 이름을 싣게 된 인물이다. 당시 나이가 14, 5세 정도였다.


저주란 게 어떤 거였냐면, 벼락 맞은 나무, 무덤 위의 나무, 태어난 지 7일이 지나지 않은 아기의 배냇저고리, 고양이 새끼 시체 말린 것(...), 흰 병아리 시체 말린 것(...), 죽은 아기의 머리와 두 손(...;;;) 등의 재료를 숙련된 무당이 조합해서 만든 가루를 왕의 침실에 뿌리는 거였다. 그 외에도 불상을 만들어서 부처 뱃속에 저주의 글을 집어넣는 것도 있었다.


왕의 동생이고 해서 본인은 직접 심문을 받지 않았지만, 옆에서 모시던 궁녀 업이가 진술한 기록이 남아 있다. 사춘기 청소년은 무섭다.


업이(業伊)에게 물었다.

“대내(大內)에서 저주하는 흉악한 짓을 한 것은 무엇을 하려는 속셈이었느냐?”

업이가 말했다.

“저주를 하면 사람이 갑자기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또 물었다.

“누구를 향해서 그렇게 한 것이냐?”

업이가 말했다.

“주상을 향해서 했습니다. 옹주는 자기가 편안해지고 싶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질문: 옹주에게 무슨 편안하지 못한 일이 있어서 이런 흉악한 계획을 꾸며서 편안해지려고 했단 말이냐?

진술: 살고 싶지 않아서 이런 저주를 하였습니다.

질문: 무슨 일 때문에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냐?

진술: 임금께서 잘 대해주시지 않고 주시는 물건도 예전 같지 않아서 이런 계획을 세웠습니다. 편안해지려고 한 것은 임금은 없어지고 자기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질문: 임금께서 없어진 후 어떻게 편안할 일이 있다는 말이냐?

진술: 혼자 살고 싶어 했습니다.

재차 질문 후 진술: 낙성위(洛城尉)의 아버지와 살고 싶어 했습니다.

재차 질문 후 진술: 일이 이루어진 후에는 낙성위의 아버지를 임금으로 삼고 싶어 했습니다.


2017. 9. 25. 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