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록鄭鑑錄』이라는 건 대략 18세기 초의 기록에서부터 등장하는 도참서圖讖書 가운데 하나입니다. 도참은 세계나 국가 등의 미래에 대한 동아시아적 예언으로, 이런저런 종교적 요소가 풍부하게 담겨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원래 정감록은 이런 수많은 도참서 가운데 하나였으나, 나중에 워낙에 유명해지는 바람에 도참서 자체의 대명사처럼 되었습니다. 다음
오늘날 학자들이나 호사가들이 이용하는 『정감록鄭鑑錄』의 대본은 대개 20세기 초에 출판된 것들입니다. 1913(大正2)년에 아유가이 후사노신鮎具房之進이 “총독부 학무과 분실에 있는” 『정감록』과 『무학기無學記』를 필사하고 해제를 달아 놓는 등 일찍부터 조선의 도참서는 일본인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습니다. (백승종, 『한국의 예언문화사』, 푸른역사, 2006. 254~260쪽) 1923년에는 당국에 의해 『정감록』의 간행이 허가되었습니다. 다음의 기사에는 당시의 상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정감록의 경쟁
-각기 내 것이 좋다고-
근일에 정감록鄭鑑錄 발간을 당국에서 허가하여 이것을 인쇄·발매하는 자가 많은바 각각 자찬적自讚的 선전하여 각 지방에 판매하랴 분주한 모양인데, 그 내용과 제목은 수종數種이 있으니 조선도서주식회사와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발매하는 자는 조선사람의 명의로 발행하는 자로 가장 먼저 출판된 바 그 내용인즉 칠서사십칠결七書四十七訣 일백삼십여 페이지로 된 책자로서 특가 팔십 전인데 그 출처와 유래가 상당하다 하고 이문당以文堂에서 발매하는 것은 일본인의 저작으로 이십이결 칠십 페이지의 책자로 대금은 칠십오전인 바 진본정감록眞本鄭鑑錄이라 하는데 만일 진본이 아니면 대금을 도로 보내겠다고 보증까지 한다 하며 또 동경에서 발간되었다는것은 아직 조선에 건너오지 아니하였다더라.
『조선일보』 1923.3.25 석간 3면. 표기법은 현대식으로 바꾸었음.
여기에서 언급된 "정감록들"의 서지는 다음과 같다.
① 金用柱,,『鄭鑑錄』, 朝鮮圖書株式會社, 1923
② 柳田 文治郞, 『眞本 鄭堪錄』, 以文堂, 1923
③ 細井 肇, 『秘訣輯錄』, 東京 : 自由討究社, 1923
이들은 사실 하나같이 출처가 다른 여러 도참서들을 모아 놓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때 “경쟁”한 책들 가운데 가장 정확한 제목은 “동경에서 발간되었다는” 호소이 하지메細井 肇의 『비결집록秘訣輯錄』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한 편저자에 의해 집성되었더라도 각각의 도참서는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여러 책들입니다. 또한 각각의 책들 역시 본편 외에 수 편 씩의 독립적인 “작은 도참서”들을 수록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출간된 도참서들의 목차를 보아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용주의 『정감록』은 7권의 도참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가운데 3권에는 본편 이외에 2편에서 수십 편 정도의 작은 도참서들이 부록으로 붙어 있습니다. 즉, 위의 기사에서 말하는 “七書四十七訣”이란 7권의 책, 그 각각의 본편과 작은 도참서들을 합쳐 총 47편의 도참서가 수록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호소이의 『비결집록』에도 아유가이가 참고한 규장각본 『정감록』이 앞에 실려 있고(여기에도 「감결鑑訣」이라는 제목으로 구분된 『정감록』 본문 이외에 3편의 작은 도참서가 붙어 있습니다. 원본인 규장각본에는 「감결」이라는 소제목이 보이지 않지요), 이어서 유사한 형식으로 본편과 작은 도참서로 이루어진 9권 20편의 도참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유사고본類似稿本”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부록에는 역시 5권 10편의 도참서가 들어 있습니다. 또한 『비결집록』에는 본문 외에 50페이지의 논설과 일본어 역본이 실려 있는데, 이 번역은 첫 책인 『정감록』, 즉 본편인 「감결」과 이어지는 3편의 작은 도참서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현대에 출간된 도참서 가운데에도 이런 식의 “집성集成”이 이루어진 사례가 있습니다. 1981년에 출간된 『정감록집성鄭鑑錄集成』은 위와 같이 성립된 20세기 초의 출판본들과 새로운 필사본들을 합쳐서 다시 두터운 한 권의 영인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안춘근, 『鄭鑑錄集成』, 아세아문화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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