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성, 『동학의 테오프락시』 2, 3장
한 승 훈
1. 한국종교사의 유형론적 구조와 동학의 위치
2장에서는 기존 한국종교사 연구에 있어 동학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다룬다. 지역 종교사로서의 한국종교사에 접근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개별 종교전통의 역사, 즉 한국불교사, 한국기독교사, 한국유교사, 또는 한국무속사 등을 각각 서술하고 그 합을 한국종교사로 파악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구조적인 관점에서 유형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한국종교사의 각 국면을 다루는 것이다. 특정한 제도종교의 배경을 전제하지 않는 종교학에서의 한국종교사 연구는 주로 후자의 접근법을 취해 왔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정진홍과 윤이흠의 유형론이 대표적이다. 정진홍은 한국의 종교문화가 가진 ‘해답의 상징체계’에 따라 1) 하늘과 힘의 실재(무속), 2) 미토스의 발견(불교), 3) 로고스의 전개(유교), 4) 테오스의 경험(기독교), 5) 안트로포스의 다섯 유형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개별종교전통들을 각각의 유형에 대응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사실상 각 종교전통의 특정한 요소를 일반화한 유형화다. 이 유형론에서 동학은 누락되어 있다.
기복형, 구도형, 개벽형으로 나뉜 윤이흠의 신념유형 또한 비슷한 전략을 택하고 있다. 한국종교사에 있어 기복형은 고대종교의 두드러지는 특징이었으며, 이는 무속으로 이어졌다. 구도형은 세계종교, 구체적으로 불교가 유입되면서 등장했다. 개벽형은 후삼국시대의 혼란기에 나타난 시대정신이다. 그리고 이후의 종교사는 이 세 유형의 혼합 및 상호관계를 통해 서술되고 있다. 윤이흠 자신은 동학을 개벽-구도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최종성은 동학이 기복, 구도, 개벽이 어우러진 종교문화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런 식의 유형론에 대해 최종성이 내놓는 대안은 무속-불교-유교-서학(가톨릭)-동학(신종교)-개신교가 순차적으로 등장하면서 한국종교문화에 파장을 일으킨 ‘국면’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고대 사회의 “무불교대”에 의해 하늘의 힘은 부처의 힘으로, 무당의 권위는 승려의 권위로 교체되었다. 이런 시각에 의하면 동학은 19세기 전반에 한국종교문화 내에 자리를 잡았던 서학과 충돌하며 영성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였고, 이후 개신교와 더불어 유입된 서구문화와 충돌하며 근대적인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이 책의 전체 전개를 관통하고 있는 ‘초기동학’과 ‘후기동학’의 구도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이상과 같은 유형론은 각각의 종교전통들을 고립적으로 다루는 시각에 비하면 분명 진전된 것이지만,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첫째, 세 유형론은 모두 무속을 원시적, 혹은 고대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을 고수하고 있다. 무속에 주술성, 혹은 기복성이 있다는 사실이 그대로 그것이 고대적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고대종교가 현존하는 세계종교 가운데 하나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 그것을 현대의 민속종교나 무속과 동일시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둘째, 동학을 천주교 또는 개신교와의 관계 속에서 서술하는 것은 새로운 종교운동으로서의 동학이 한국 종교문화 내에서 마주해야 했던 다양한 접점들을 단순화시킨다. 최제우, 최시형은 서학과의 관계보다 유교와의 관계에 대해 훨씬 많은 저술이나 어록을 남겼다. 그리고 후기동학 가운데에서도 수운교는 불교의, 동학교는 유교의 언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교의와 실천을 구성하였다.
2. 기존 동학연구의 극복
3장에서 지적하고 있는 기존 동학연구의 한계는 크게 세 가지이다: 초기-중심주의, 주류-중심주의, 교의-중심주의. 이들은 사실 종교연구 일반이 빠지기 쉬운 함정들이기도 하다. 초기-중심주의는 비단 신종교연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각각의 종교전통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교조, 기원, 초기공동체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주장하곤 하는데, 종교연구자들은 흔히 이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곤 한다. 주류-중심주의 또한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주류라 주장하는 제도종교는 동일한 전통 내에 있는 다양한 흐름들을 전통으로부터의 일탈이나 중요하지 않은 방계의 움직임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교의-중심주의는 이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이는 교의, 사상, 믿음, 신학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 중심의 종교개념을 수용한 결과로, 근대 이후 종교 개념에 맞게 자신들을 규정해야 했던 제도종교들과, 이 개념에 의지하여 연구를 진행했던 종교연구가 가졌던 한계다.
결국 기존 동학연구의 한계지점들은 종교 내부로부터의 연구, 그리고 그 구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외부로부터의 연구가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문제다. 이는 기성 세계종교들이나 근대 신종교에 대해서만 나타나는 경향이 아니다. 비교적 최근에 종교 개념의 모델 속에서 탐구되기 시작한 무속 또한 그 고대적 기원에서 그 정체성과 정당성을 찾으려 했고, 그 모델에서 어긋나는 역사적, 현실적 실체들을 ‘일탈적인 것’으로서 소거시켜 나갔다. 이른바 ‘무교’ 담론에서는 실제 관찰 가능한 무속의 실천적 측면들보다는 근원적이고 이상적인 민족/민중 사상에 주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한국종교 전체에 대한 담론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종교’의 고유한 특성을 찾으려는 논의는 흔히 고대의 신교나 제천의식, 혹은 최치원의 풍류도를 언급하곤 한다. 외래적인 문화의 유입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이런 원형적인 것들의 바탕 위에서 수용될 것이라는 사고방식이다. 앞 장에서 다룬 유형론들은 각 시대의 ‘주류’ 전통의 통시적 배열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유형들의 특징을 결정짓는 것은 대개 각 전통의 명시적인 교의들이다.
그렇다면 종교연구가 그와 같은 한계들을 극복함으로써 얻을 유익은 무엇인가? 초기-중심주의의 극복은 상황적 조건에 따른 종교문화의 변화에 주목하게 할 것이다. 주류-중심주의의 극복은 종교운동의 역사적 전개에 따라 나타나는 다양성을 발견하게 할 것이다. 교의-중심주의의 극복은 종교적 실천과 그 물질적 차원, 교의와 현실 사이의 불일치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 줄 것이다. 이는 동학에 대해서도, 한국종교사 일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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