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한 챕터에서 다룰 내용이라 이 참에 꼼꼼하게 공부해 보자 하는 생각으로 이틀째 엥겔스의 <독일 농민전쟁>이랑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을 읽고 있다. 전근대 반란 해석에 흔히 인용되는 이른바 '종교적 외피론'에 대한 것이다. 독일어에 약해서 1926년의 영역본이랑 1988년의 한국어역본을 대조하면서 보는데 여러 모로 느끼는 게 많다.
흔히 '종교적 외피론'은 반란에서 계급적 요구와 종교적 표현을 분리해서, 종교적 표현은 시대적 한계 또는 대중동원을 위한 '껍데기'일 뿐이었다는 주장으로 이해되곤 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종교색이 강한 전근대의 반란은 진정한 혁명이 될 수 없었고, 보다 철저한 유물론과 계급의식으로 대체되어야만 했다. 이것은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의 구분이나 종교를 허위의식으로 파악하는 등 마르크스주의의 표준적인 전제들을 혁세적 종교운동에 그대로 적용하는 이해 방식이다.
문제는 엥겔스와 마르크스의 종교관은 상당히 달랐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보다 신실했던(...) 엥겔스는 19세기 당시 독일과 영국에서 이루어지던 비판적 성서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초기 기독교나 뮌처 사상의 혁명성을 꽤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의 주장은 전근대 반란에서 종교적 표현과 계급적 요구를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었다는 것에 가깝다. 종교는 반란 상황에서 서로 다른 지역이나 계층 집단을 결합시키고, 지배체제의 종교를 재해석함으로써 저항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한다. 이를테면 "지배자들의 종교는 예수의 하느님나라와는 반대된다."는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의 주장이 이 계보에 속한다.
한국종교사의 경우, '외피론'은 동학농민전쟁이나 조선후기 변란 해석에서 종종 이용되어 왔다. 흔한 레퍼토리는 이런 사건들에서 두 개의 세력이 연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중 좀 더 종교적인 편(최시형의 북접 혹은 조선후기의 미륵 또는 도참신앙자)이 좀 더 혁명적인 편(전봉준의 남접 혹은 조선후기의 무장투쟁세력)을 압도하면 반란은 한계에 부딛히고, 반대로 후자가 전자를 극복하면 보다 근대적인 혁명으로 발전한다는 식이다. 이런 도식은 학술논문에서부터 문학작품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있다. 이건 이거대로 가능한 주장이지만, 적어도 엥겔스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의문인 것은 통속적 혹은 교조적 버전의 외피론이 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왔나 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엥겔스의 글에서 '외피'에 해당하는 단어를 찾지 못했다. 좀 더 꼼꼼하게 학설사를 살펴봐야겠지만, 내가 이해하기로는 프랑스와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구체제와 밀접하게 결탁하고 있었던 가톨릭과 정교회에 대한 반종교론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외피론'이라는 단어가 부각되었고, 이에 대한 오해도 널리 퍼져나갔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 개념은 20세기 초 중국과 일본, 그리고 식민지 조선에서 번역되면서 태평천국운동이나 동학농민전쟁의 '실패'를 설명하는 데 적용되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최선웅의 "일제시기 사회주의 진영의 동학농민전쟁 인식" [역사문제연구 33, 2015] 이라는 논문에서 도움을 받았다.)
종교학쟁이의 입장에서는 이 통속적 버전보다는 원래의 엥겔스식 관점이 더 매력적이긴 하다. 엥겔스는 종교가 체제유지를 위해서도, 체제전복을 위해서도 이용되었다는 점을 지적한 선구적인 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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