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달의 『민중과 유토피아』 (원제: 『朝鮮民衆運動の展開: 士の論理と救済思想』)의 결론 부분에는 재밌는 주장 하나가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조선 후기 민중사상의 구조가 20세기 남한의 권위주의 체제나 민주화 과정에도 계속해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아이디어지만 이 책에서는 간략하게만 다루고 있다.
21세기 이후 대의정치에서 나타나는 현상들도 이 틀에서 해석해 볼 수 있겠다. 이를테면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권을 창출한 '노무현 신화'는 "덕망가적 질서관", 박근혜 정권을 지탱했던 '박정희 신화'는 민중의 "국왕환상"이라는 개념과 잘 들어맞는다. 한편 21세기 초 정치사의 수수께끼들인 이명박 정권의 탄생이나 안철수 현상은 "명망가"에게 "덕망가"적 기대가 투사되고, 이어서 그 기대가 좌절되는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촛불시위로 대표되는 다양한 시민 저항과 그 이외의 기간 동안 지속된 기괴한 침묵은 조경달이 강조하는 "사(士) 의식"의 부침과 너무나 잘 들어맞는 사태다.
정치인 팬덤을 '종교적'이라고 묘사하는 비평은 흔하지만, 이게 단순히 대중에 대한 비난이나 조소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게 어떤 방식으로 '종교적'인지를 세심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겠다. 거창하게 이름을 붙인다면 '정치에 대한 종교문화비평'이 되겠다.
'종교학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을 요구하는 신화들 (0) | 2018.10.11 |
---|---|
워마드 성체훼손 사건에 대해 (0) | 2018.07.12 |
칸트 전집의 '아프리오리(a priori)' 번역과 현장의 '오종불번(五種不翻)' (1) | 2018.06.12 |
중국의 무슬림, 유지 (0) | 2018.05.27 |
대형교회 목사와 리버럴 정치인 (0) | 2018.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