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 잡담 썸네일형 리스트형 헬조선의 고구마 제임스 스콧은 감자, 고구마와 같은 뿌리작물은 다 자라도 따로 저장하는 대신 땅에 '묻어 두고' 캐어먹을 수 있기 때문에 수탈을 피하는 데 유리하다고 보았다. 국가에서 뺏어가려면 그때그때 땅을 파야 해서 번거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은 어땠나 찾아봤더니 정조 때에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고구마가 기근 버티기에 좋아서 농민들이 많이들 심었는데, 아전들이 다 자라기도 전에 뿌리까지 다 뺏어가서 씨가 말랐다는 거다. 그래서 중앙정부에서는 세금으로도 거둘 수 없는 고구마 농사를 오히려 장려하고 수탈을 금지해야 했다. 조선은 역시 헬이었다. 더보기 황교안에 대한 안동 유림의 발언에 대해 황교안을 두고 "백 년 마다 나타나는 구세주"라는 발언(실제로 이것은 두 사람의 발언을 섞어서 재구성한 구절이다)은 그 자체로도 낯 뜨거운 아첨이지만 유교 경전의 틀에서 봐도 아주 이상하다. 유교 메시아니즘(놀랍게도 이런 게 있다)의 주기는 100년이 아니라 500년이기 때문이다. 『맹자』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요순 시대로부터 500년 후에 탕왕이 나타나고, 또 500년 후에 문왕, 또 500년 후에 공자가 나타난 것으로 되어 있다. 또 하나의 개그포인트는 해당 발언에서 지금을 '건국 100년, 3.1절 100년'이라고 불렀다는 점인데, 이거 임정정통론이다. 황교안네 정당을 포함한 한국 극우세력의 공식적인 입장은 이승만에 의한 건국이라서 건국 이후 아직 100년이 안 됐다. 자기 발언에 권위를 부여할 수.. 더보기 제도종교의 수명은 얼마나 남았을까? 정기적인 의례 회합, 계서화된 성직 제도, 명확한 소속의식 같은 것들을 특징으로 하는 근대적 종교제도는 인류사에서 비교적 최근에 확산되었다. 그리고 지구상의 많은 지역에서 급속하게 축소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대부분의 교단 종교는 고령인구의 자연감소와 함께 종교소속을 가진 사람들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새로운 세대의 유입은 예전만 못하다. 인구 센서스 상에서 종교 인구가 줄어드는 것, 특히 불교와 가톨릭 인구가 가시적으로 줄어든 것은 그 징후다. (2015년 조사에서 유일하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된 개신교는 '가나안 성도' 문제에 골몰하고 있다. 통계상 개신교 소속으로 포착되는 사람들도 교회에 성실하게 출석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제도종교가 근래(한국의 경우 겨우 백여 년 전)에 등장한 체제라면, 사.. 더보기 브루스 링컨, 조너선 스미스, 미르체아 엘리아데. 첫 만남. 20세기 종교학의 세 거장인 엘리아데, 브루스 링컨, 조너선 스미스의 첫 만남에 대한 링컨의 회고. 세 사람의 성향 차이를 보여줌과 동시에, 종교학이 얼마나 징글징글한 학문인지를 알게 하는 글이다. 나는 1971년 가을에 미르체아 엘리아데와 종교학을 공부하기 위해 시카고대에 왔다. 나는 그를 나이브하게 (그러나 아마도 정확하게) 프레이저에 가장 가까운 현대의 대응물로 여겼다. 그러나 그는 그 전 해에 심장 "발작"에 시달렸고, 대학에서는 그가 불필요한 요구를 받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나 같은 새로운 학생들을 받는 일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학과의 신임 교수였던 조너선 Z. 스미스에게로 갔다. 프레이저를 논파하는 박사논문을 막 끝마친 참이었던 스미스는 그의 비판적인 에너지를 엘리아데의 방법과 이론.. 더보기 종교 묻은 혐오세력들 혐오반대 시위에 대한 영화 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는 혐오세력이 일베나 태극기부대 같은 그냥 관종 극우세력이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폭력적으로 대항해도 어느 정도 정당성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종교 묻은 혐오세력, 그것도 주류종교를 끼고 있는 혐오세력은 대응하기가 훨씬 까다롭다. 종교적 담론에는 묘한 기능이 있어서 아무리 추한 행동이라도 자기들끼리는 신실해 보이게 만들고, 아무리 역겨운 사고방식이라도 스스로는 정의롭게 여기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투르게 폭력으로 맞서기 시작하면 이쪽은 완벽한 악마의 위치에 설 수 있다. 그걸 노리고 저러는 거다. 게다가 혐오세력이 해당 종교조직을 대표한다고 여겨지기 시작하면 의회나 행정부의 정치인들은 겁을 먹는다. 그 다음 단계가 최악인데,.. 더보기 명말 중국의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스도교 마테오 리치가 기록한 명말 중국의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스도교 상황. 당시 중국에는 무슬림이나 유대교 공동체는 물론 아르메니아 계통 그리스도교도 존재했다고 한다. 당대 이전의 “경교”와는 달리 이들은 “십자교”라고 불린 모양이다. (마테오 리치, 중에서.) “중국의 서쪽에는 페르시아가 가까이 붙어 있는데, 각각의 시대마다 많은 회교도들이 중국에 들어왔다. 그들은 매우 빨리 그 숫자를 불려나가 전국의 각 도시마다 회교도가 있다. 그 숫자는 몇 천 가구 이상이고, 이슬람교 사원도 많이 있는데, 거기에서 경을 읽으면서 그들의 종교의식을 거행한다.” “내가 아는 바로는, 회교도는 새로운 신도를 받아들이거나 밖으로 그들의 신앙을 선전하지 않는다. 그들 자신이 중국의 법률을 준수하고 자신의 종교에 대해서 아는 바.. 더보기 왕을 요구하는 신화들 고대신화에서 왕 주세요 징징하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왕권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정당화로부터 그 부작용에 대한 정치적 풍자와 비판까지 담겨있기 때문이다. 전한 지절(地節) 원년 임자(壬子)(69년) 3월 초하룻날 6부의 조상들이 각각 자제들을 데리고 다 함께 알천(閼川) 언덕 위에 모여 의논하기를 “우리들이 위로 백성들을 다스릴 만한 임금이 없어 백성들이 모두 방종하여 제멋대로 놀고 있으니 어찌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어 그를 임금으로 삼아 나라를 창건하고 도읍을 정하지 않을 것이랴!” 하였다.(『삼국유사』 신라시조 혁거세왕) 사무엘은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다."당신들을 다스릴 왕의 권한은 이러합니다. 그는 당신들의 아들들을 데.. 더보기 워마드 성체훼손 사건에 대해 나는 신성모독이나 성상파괴 같은 데 관심 있는 어둠의 종교학자라(...) 워마드에 게시된 성체훼손 자체는 그다지 충격적이거나 하지 않다. (종교사적으로 이런 사례는 워낙에 흔하다.) 대신 그에 대한 여러 반응들- 경악, 공포, 혐오, 역겨움, 공감, 정당화, 슬픔 등에 주목하게 된다. 종교상징에 대한 다양한 태도 차이가 이런 계기에서 드러난다. 워마드식 실천을 뭔가 전략을 갖춘 ‘운동’이라 생각하고 평가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뭐든 조금이라도 좋은 효과가 있다면 좋은 일인데, 이번 경우는 절망적이다. 여성에 대한 가톨릭의 일반적인 제도 및 태도가 빻았다는 것은 새삼 폭로할 필요가 없을 만큼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성체에 대한 믿음은 많은 점에서 그런 제도나 가부장적 권위보다는 신자 대중의.. 더보기 노무현 신화와 박정희 신화 조경달의 『민중과 유토피아』 (원제: 『朝鮮民衆運動の展開: 士の論理と救済思想』)의 결론 부분에는 재밌는 주장 하나가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조선 후기 민중사상의 구조가 20세기 남한의 권위주의 체제나 민주화 과정에도 계속해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아이디어지만 이 책에서는 간략하게만 다루고 있다. 21세기 이후 대의정치에서 나타나는 현상들도 이 틀에서 해석해 볼 수 있겠다. 이를테면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권을 창출한 '노무현 신화'는 "덕망가적 질서관", 박근혜 정권을 지탱했던 '박정희 신화'는 민중의 "국왕환상"이라는 개념과 잘 들어맞는다. 한편 21세기 초 정치사의 수수께끼들인 이명박 정권의 탄생이나 안철수 현상은 "명망가"에게 "덕망가"적 기대가 .. 더보기 칸트 전집의 '아프리오리(a priori)' 번역과 현장의 '오종불번(五種不翻)' 칸트 전집이 나온 이후 용어 번역과 관련된 논의들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사실 칸트 자체엔 큰 관심 없지만 종교학 책에서 시도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a priori의 번역이 핵심적인 쟁점 중의 하나라 그렇다. 칸트학회는 논의 끝에 이 단어를 "아프리오리"로 그대로 음역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걸 두고 소리나는대로 읽는 게 무슨 번역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어짜피 이거 독일어가 아니고 라틴어인데 칸트도 번역하지 않고 쓴 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학술용어란 음차를 해오든, 새로 말을 만들든, 기존의 용어와 대응시키든, 학계에서 소통만 되면 된다고 생각한다. 단지 이 상황에서 특수한 것은 칸트의 저작과 개념들은 '칸트학계'에서 '경전'의 위상을 가진다는 것이다. 해당 학문공동체 내의 모든 구성원이 같은 .. 더보기 중국의 무슬림, 유지 유지(劉智, 1660?-1730?)는 청나라의 이슬람 학자였다. 남경 사람으로 대대로 무슬림인 가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어릴 때에는 아버지 유삼걸(劉三杰)에게 이슬람을 배우고, 12세부터 남경의 모스크에서 원여계(袁汝契)라는 인물에게 본격적으로 꾸란을 배웠다고 한다. 이 나이 때 아랍어, 페르시아어, 라틴어까지 마스터했다는(...) 먼치킨. 17세기 중국에 이런 무슬림이 있었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긴 한데, 유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던 모양이다. 15살 때부터는 유교, 불교, 도교를 팠다; 이때부터 그는 공자와 맹자를 '동방의 성인', 무함마드를 '서방의 성인'이라고 하면서 동서 성인의 가르침이 고대에는 같은 것이었다고 믿게 되었다. 서른 살 때부터는 청량산(.. 더보기 대형교회 목사와 리버럴 정치인 나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대형교회 목사들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큰 선거가 있은 다음에는 으레 각종 종교사회학 관련 저널에 "정치 성향과 종교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문이 쏟아진다. 대체로 선거 때 지지 정당과 종교 소속을 비교하는 방법이 많이 쓰이는데, 많은 경우 불교가 가장 보수적이고, 천주교가 중간쯤 되며, 개신교가 가장 진보적으로 나온다. 이런 결과는 이들 종교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우리의 직관과 어긋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나 정의구현사제단이 있는 천주교가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며, 정치적,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에 서 있는 교단이 절대 다수인 개신교가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상한 통계의 비밀은 이렇다. 보수-극우 정.. 더보기 한국산 "신본주의" 예전부터 숙제처럼 생각하고 있던 의문이 있다. 주로 보수 개신교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인본주의"의 반대말로서의) "신본주의"라는 용어가 대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말은 목사들의 설교에서나 일상 용어에서 세속문화나 과학적 세계관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근본주의적 세계관을 옹호하는 표현으로 즐겨 사용된다. 신본주의-인본주의라고 하면 운율이 잘 맞는 것 같지만, 사실 "인문주의"라고도 번역되는 humanism에 대응되는, 신을 중심 또는 우선으로 삼는 사상이라는 서구어 단어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최근에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먼저 한국에서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30년대 즈음으로 보인다. 1930년 10월 5일자 동아일보에는 당시 경성에서 이루어지는 .. 더보기 성령, 성신, 귀신 하비 콕스의 최근작 『신이 된 시장(The Market as God)』을 재밌게 읽고 있는데, 경제 평론 부분은 그렇다 치고 기독교 개론서로서도 이것저것 조금씩 건드리고 있어서 좋다. 이런 대목이 있다. "많은 이들이 영어로 'Holy Spirit'이 한때 'Holy Ghost'라고 지칭된 일을 기억할 것이다. 시구에서는 'heavenly host'와 운율을 맞춰야 하는 널리 쓰이는 송영Doxology(애창곡인 찬송가 )처럼 지금도 간혹 이런 표현을 쓴다. 'ghost'라는 단어는 고대 영어 'gast'에서 유래한 것인데, gast는 독일어 'geist'와 가깝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성서 번역가들은 이 단어를 거의 없애버렸다. 일상 어법에서 이 단어는 핼러윈 도깨비나 죽은 사람의 유령을 떠올리게 하기 .. 더보기 황구의 해 언젠가부터 새해가 시작되면 십이지에다가 천간의 오행색까지 더해서 붉은 원숭이의 해니, 흑룡띠니, 백호띠니 하는 유행이 생겼다. 물건파는 사람들이나 점치는 사람들이 써먹기에 좋아서일 터다. 그건 그러려니 했는데, 무술년이 되니 "황금 개"의 해라고 하면서 개 그려진 금 상품이 팔린다고 한다. 저쪽 전통을 존중한다고 해도, "무술"은 그냥 "황구"다. 농가에 흔한 누런 똥개의 색이다. "금"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2018. 1. 3. 페북. 더보기 19세기 중국의 타노스 명청시대 중국에서는 생산력에 비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에 불안을 느끼는 멜서스식 인구론이 유행하였다고 한다. 보통은 황무지를 개간하거나 이주를 권장하는 식의 온건한 해법이 주류였지만, 가끔 또라이들이 이런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왕사탁, 1814-1889)는 인구를 줄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여아를 죽이는 부모에게 상을 주는 일이라고 했다. 또 가난한 집에서는 딸을 낳지 못하게 하고 부잣집에서도 딸 둘을 낳으면 하나는 대야 물에 얼굴을 처박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비구니가 되는 여자에게는 상을 주자고 역설했다. 30년간 이렇게 하면 인구가 점차 줄 것이고 60년이 지나면 천하가 부유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왕사탁은 또 혼인연령을 높이고 재혼을 억제하면 인구를 감소시킬 수 있을.. 더보기 역사엔 가정이 있는가? “역사엔 가정이 없다지만,” 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일수록 곧바로 이어서 “만약에”로 시작하는 가정들을 늘어놓곤 한다. 나쁜 일이 아니다. 전문적인 역사학에서도 특정한 가상의 조건을 넣거나 빼면서 사건의 인과를 검증하는 일이 딱히 금지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의심스러운 것은 “역사엔 가정이 없다”는 말의 출처다. 대개의 유명한 말들이 그렇듯이 이 경구는 최초의 발화자나 전거가 알려져 있지 않다. 극단적인 사료 실증주의자가 아니면, 근대 역사학을 오해한 아마추어의 소행일 것이다. 좀 더 진실에 가깝게 말하자면, 역사엔 가정이 별로 필요 없다. 역사는 가능성이 실현되는 공간이다. 여기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이상한 사건들도 숱하게 일어난다.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에 굳.. 더보기 이천국왕 하차와 프레스터 요한 웹툰에 피싱사기(...)로 나온 이천국왕(夷千島王) 하차(遐叉) 얘기가 재밌어서 자료랑 연구를 찾아봤다. 웹툰에 언급된 사건 이외에는 자료도 극히 적고, 한국에서는 연구도 거의 전무했다. 정말로 피싱사건 취급을 받고 있는 듯... 일단 실록에 실린 하차의 편지 내용은 이렇다. "남염부주(南閻浮州) 동해로(東海路) 이천도(夷千島)의 왕(王) 하차(遐叉)는 조선국(朝鮮國) 전하(殿下)께 올립니다. 짐(朕)의 나라에는 원래 불법(佛法)이 없었는데, 부상(扶桑)과 더불어 통화(通和)한 이래로 불법이 있음을 알게 되어, 이제 3백여 년이 되었습니다. 부상에서 가지고 있는 불상(佛像)과 경권(經卷)은 모두 구하여 가지고 있으나, 부상에는 원래 《대장경(大藏經)》이 없어서 그것을 얻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비록.. 더보기 밤피르와 라이칸쓰로프 어릴 때 판타지 설정집 같은 걸 모으길 좋아했다. 아마 일본책을 베낀 것들이 대부분이었을 텐데, 몇몇 부분들은 지금도 떠오른다. 이를테면 “밤피르”는 뱀파이어와 인간의 혼혈아고, “라이칸쓰로프”는 웨어울프, 웨어베어 등 동물형태로 변신하는 인간의 총칭이라는 식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밤피르는 단순히 뱀파이어의 프랑스어 발음을 대충 옮겨놓은 것 같고(동유럽 전승의 “담피르”는 정말로 인간과 흡혈귀의 혼혈이다), 라이칸쓰로프는 그냥 그리스어로 늑대인간이다. 종교, 민속 용어가 장르문학 쪽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의미가 확장, 변화되는 사례는 이런 것 외에도 무수히 많다. 당장 “진” 같은 것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쿠란이나 이슬람 신화에 나오는 영적 존재보다는 디즈니의 시퍼런 “지니”를 먼저 떠올릴 것이.. 더보기 글쓰기를 시작할 때 시나 소설이랑은 조금 다르지만 학술논문도 작법서가 있다. 시카고대에서 나온 The Craft of Research (번역제목 『학술논문 작성법』)는 그 중에서도 아주 훌륭하다. 단순히 테크닉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글 쓰는 걸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느낌이다. 개중에서도 가장 도움이 되었던 구절은 이거다."(...) 경험이 많은 연구자는 자료가 모두 준비되기까지 글쓰기를 미루는 것이 아니라 연구를 시작하자마자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정보를 새로운 방식으로 배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요즘처럼 자료 접근성이 좋아진 시대에는 자료나 선행연구를 '모두' 섭렵한 후에 글쓰기를 시작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자료 속에서 무작정 헤매다보면 애초에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조.. 더보기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