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성모독이나 성상파괴 같은 데 관심 있는 어둠의 종교학자라(...) 워마드에 게시된 성체훼손 자체는 그다지 충격적이거나 하지 않다. (종교사적으로 이런 사례는 워낙에 흔하다.) 대신 그에 대한 여러 반응들- 경악, 공포, 혐오, 역겨움, 공감, 정당화, 슬픔 등에 주목하게 된다. 종교상징에 대한 다양한 태도 차이가 이런 계기에서 드러난다.
워마드식 실천을 뭔가 전략을 갖춘 ‘운동’이라 생각하고 평가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뭐든 조금이라도 좋은 효과가 있다면 좋은 일인데, 이번 경우는 절망적이다.
여성에 대한 가톨릭의 일반적인 제도 및 태도가 빻았다는 것은 새삼 폭로할 필요가 없을 만큼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성체에 대한 믿음은 많은 점에서 그런 제도나 가부장적 권위보다는 신자 대중의 민속신앙적 영역과 관련이 깊다. 그래서 ‘제병 태우기’는 보수적인 사제들에게는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의 기회를 주고, 선량한 신자들에게는 상처를 주는 효과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 하나의 논점은 일베의 신성모독은 그다지 화제가 되지 않았는데 왜 워마드만 갖고 그러냐는 거다.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성체훼손’이 ‘마리아콜걸’보다 더 주목받는 것은 단순히 여성에 의한 실천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톨릭은 자의식적으로나, 타자에 의한 규정에 있어서나 의례에 강조점을 두는 전통이다. 상징은 대단히 실재적이고 물질적인 형태로 경험되며 금기에 대한 감각이 발달해 있다. 이런 감각은 의례를 믿음에 비해 주변적인 것으로 밀어내버린 개신교나, 개신교적 모델을 통해 기독교나 종교 일반을 이해하는 다수 한국인에게는 낯선 느낌이다.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한 반응들에는 미묘한 차이가 발견된다. 남성 일반은 다른 워마드발 사건들에 비해서 유독 특별한 반응을 보이는 거 같지 않다. “메갈이 또...” 정도일까.
한편 제병(성체)에 대한 감성이 비교적 강한 가톨릭, (고교회적) 성공회, 정교회 등에 관련된 이들의 반응은 ‘분노’보다는 ‘슬픔’이나 ‘아픔’이 지배적이다.
개신교가 제일 복잡한데, 이쪽은 신성모독에 대한 분노는 공유하면서도 일상적인 반가톨릭 정서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반가톨릭 정서’라고 해서 가톨릭을 싫어한다는 게 아니라, 의례에 대한 경멸 같은 태도를 말한다. “행위 보다 믿음”이라거나, 금기에 대해 집착하는 것을 전근대적이라고 믿는 것은 진보적인 개신교인들에게 오히려 강한 정서이기도 하다.
워마드와 일베가 공유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페미니즘이나 극우운동의 기존 문법으로는 이해되기 어려운, 마치 ‘관심 끌기’가 궁극적인 목적인 듯한 실천이다. 이 목적을 기준으로 보면 워마드가 이겼다. 이 문제에 있어, 일베는 뭔가를 열심히 공격하고 모욕하려고 애쓰지만 그것은 당사자들에게 별로 안 아픈 지점이다. 반면 워마드는 상대가 가장 아파하고 끔찍해하는 부분을 때렸다. (아마 본인이 밝혔듯 “모부님이 천주교인 년”이라 이 문화의 감각에 익숙했던 덕일 터다.) 나쁜 놈들은 별 타격 없고 약한 사람들만 맞아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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