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종교학의 세 거장인 엘리아데, 브루스 링컨, 조너선 스미스의 첫 만남에 대한 링컨의 회고. 세 사람의 성향 차이를 보여줌과 동시에, 종교학이 얼마나 징글징글한 학문인지를 알게 하는 글이다.
나는 1971년 가을에 미르체아 엘리아데와 종교학을 공부하기 위해 시카고대에 왔다. 나는 그를 나이브하게 (그러나 아마도 정확하게) 프레이저에 가장 가까운 현대의 대응물로 여겼다. 그러나 그는 그 전 해에 심장 "발작"에 시달렸고, 대학에서는 그가 불필요한 요구를 받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나 같은 새로운 학생들을 받는 일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학과의 신임 교수였던 조너선 Z. 스미스에게로 갔다. 프레이저를 논파하는 박사논문을 막 끝마친 참이었던 스미스는 그의 비판적인 에너지를 엘리아데의 방법과 이론으로 향하고 있었다.
연구 계획에 대한 물음을 받고, 나는 비교 작업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비교는 끝났어." 스미스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자넨 좀 진지해지고 전문화될 필요가 있겠어." 이에 굴하지 않고, 나는 계속 우겼다. 나는 그 선언의 이유를 묻기보다는, 그 판단의 예외를 찾으려 했다. 당연히 무엇이든 그가 무슨 이의를 제기하든 비교를 할 어떤 방법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딱 하나 있지." 그는 이렇게 대답하며 나에게 인도-유럽 언어학을 가리켰다.
나는 그와 여러 차례 대화를 반복하며, 내 초기 연구와 초기 작업을 형성하였다. 스미스의 충고는 그 장소와 순간의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었을 수 있다. 그 불과 몇 년 전, 1967년에 스티그 비칸데르(Stig Wikander), 1969년에 조르주 뒤메질(Georges Dumézil), 인도-유럽 종교 연구의 두 거인이 시카고의 하스켈 강의(Haskell Lectures)를 진행하였다. 그 둘은 문헌학적 분석, 엄밀한 텍스트 읽기, 그리고 인도어, 이란어, 그리스어, 로마어, 켈트어, 그리고 게르만어 자료를 비교하기 위한 언어/문화적 관계의 계통수(Stammbaum) 모델을 사용하였고, 비교의 범위를 같은 어족의 부분, 그리고 공통의 문화적 유산을 공유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사람들로 제한함으로써 이를 정당화하였다. 이들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이를 대단히 인상깊게 여겼다. 생각컨대, 스미스는 그들이 이전까지 시카고에서 부족했던 방법론적 엄격함을 보여줬다고 느꼈을 것이다. 엘리아데의 광범위하고 보다 직관적인 스타일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그가 권장하고자 했던 무언가 말이다.
그게 아니면, 그의 조언은 솔직하지 못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좌절과 실패를 일으키기 위해서 고안된 것일 수도 있고, 전문화하라는 요구를 수용하게 하려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스미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정당하고 변호될 수 있는 형태의 비교를 하기 위한 유일한 대가는 십수 개 이상의 매우 어려운 고대 언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멈칫했겠지만, 나는 재빨리 따랐다. 1년 만에 나는 산스크리트어, 아베스타어, 그리고 역사 언어학의 방법론에 대한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리스어, 라틴어, 고대 페르시아어와 고대 노르드어가 뒤따랐고, 아일랜드어, 러시아어, 히타이트어도 맛은 보았다(팔레비어와 몇몇 다른 언어들은 몇 년 후에 배웠다.) 내가 마침내 엘리아데에게 접촉했을 때, 그는 나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고, 나의 활동을 지원해주고, 내가 더 많은 언어를 배우고, 더 넓게 읽고, 내 비교의 지평을 넓히도록 격려해 주었다. 그의 열정은 스미스의 회의론보다는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지도를 받기로 했다.
Bruce Lincoln, Apples and Oranges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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