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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문헌

천주교랑 백련교랑 무당이랑 미륵이랑 (안정복, <천학문답> 중)

或曰。西士之說。異於是。

누군가 말했다. “서사의 설은 그와 다릅니다.


只是爲善去惡。則有何流弊之可言乎。

단지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리는 것인데 무슨 유폐라 할 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曰。是何言也。

내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善之當爲。惡之不當爲。是愚智賢不肖之所同知也。

선은 행해야 하고 악은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어리석거나 지혜롭거나 현명하거나 불초하거나 똑같이 아는 바입니다.


今有人於此。其人至惡也。

지금 여기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지극히 악합니다.


然而又有人稱之曰子是善人也。則其人喜。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이 있어서 그를 보고 ‘선생은 선한 사람이군요.’라고 하면 그 사람은 기뻐할 것입니다.


曰子是惡人也。則其人怒。

‘선생은 악한 사람이군요.’ 하면 그 사람은 화를 낼 것입니다.


善惡之別。雖惡人已知之矣。

선악의 구별은 비록 악인이라도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世豈有爲惡去善之學乎。

세상에 어찌 악을 행하고 선을 버리라는 학문이 있겠습니까?


是以從古異端。皆以爲善去惡爲敎。

이 때문에 예로부터 이단들은 모두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리는 것으로써 가르침을 삼은 것입니다.


今此西士爲善去惡之言。獨西士言之而已乎。

지금 이 서사가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리라고 하는 것이, 유독 서사들만의 말이겠습니까?


吾所憂者。以其流弊而言也。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 유폐를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其學不以現世爲言。而專以後世堂獄之報爲言。

그 학문은 현세를 말하지 않고 오로지 후세의 (천)당과 (지)옥의 응보를 말합니다.


是豈非誕妄而害聖人之正敎乎。

이 어찌 탄망하고 성인의 바른 가르침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聖人之敎。惟於現世。爲所當爲之事。光明正大。無一毫隱曲慌惚之事。

성인의 가르침은 오직 현세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한 것으로 광명정대하여 숨기거나 왜곡하거나 황홀(흐릿)한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是以孔子不語怪力亂神1)

그래서 공자께서는 ‘괴력난신’에 대해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怪是稀有之事。神是不見之物。

‘괴’란 드물게 있는 일이고, ‘신’이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若以稀有不見之事。言之不已。則人心煽動。皆歸荒誕之域。

만약 드물게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을 가지고 그치지 않고 말한다면, 사람들의 마음이 선동되어 모두 황탄한 지경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以其大者言之。漢之張角2)。唐之龐勛3)黃巢4)。宋之王則5)方臘6)。元之紅巾賊7)。明末之流賊8)。皆其流也。

그 큰 놈들을 가지고 말하자면, 한의 장각, 당의 방훈과 황소, 송의 왕칙과 방납, 원의 홍건적, 명말의 유적 모두가 그 부류입니다.


其他小小妖賊。稱彌勒佛。白蓮社之徒。在在蝟興。史傳不誣。

그 외의 소소한 요적들이 미륵불, 백련사의 무리를 칭하며 곳곳에서 (고슴도치처럼) 번잡하게 일어난 것을 역사가 속이는 것 없이 전하고 있습니다.


至若我英宗朝戊寅。新溪縣。有妖巫英武者。自稱彌勒佛。

우리나라 영조 무인년에 이르러서는 신계현에 요사한 무당 영무라는 자가 있어 스스로 미륵불을 칭하였는데,


列邑輻湊。謂之生佛出世。合掌迎拜。

여러 고을에서 다투어 모이며 생불이 세상에 나왔다고 하며 합장하고 맞이하며 절하였습니다.


令民盡除神社雜鬼之尊奉者曰。佛旣出世。豈有他神之可奉者乎。

백성들에게 받들어 모시던 신사와 잡귀를 모두 제거하라고 명령하며, ‘부처님이 이미 세상에 나왔는데, 어찌 모실만한 다른 신이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於是民皆聽命。所謂祈禱神箱9)神缸10)之屬。率皆碎破而焚之。

이에 백성들이 명령을 듣고 이른바 기도니 신상이니 신단지니 하는 종류들을 모두 부수고 깨트리고 불태워버렸습니다.


不數月之內。自海西及高陽以北嶺東一道。靡然從之。11)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해서와 고양 북쪽으로부터 영동 일도(강원도)가 휩쓸리듯 그를 따랐습니다.


西士所謂天主之敎。其從化之速。豈過於是乎。

서사의 소위 천주의 교를 따르게 되는 속도가 어찌 이보다 더하겠습니까?


其時自上送御史李敬玉按誅之。而其妖彌月不定。

그때에 주상께서 어사 이경옥을 보내시어 조사하고 처벌하게 했으나, 그 요사한 일이 한 달이 지나도록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人心之易動難定。易惑難悟。大抵如是矣。

사람 마음이 동요하기는 쉽고 진정되기는 어려우며, 미혹되기는 쉽지만 깨닫기는 어려운 것이 대체로 이와 같습니다.


今世爲此學者。其言曰一心尊事上帝。無一息之停。比之吾儒主敬之學12)也。

지금 세상에서 이 학을 하는 자들은 ‘한 마음으로 상제를 받들어 모시며 한 순간도 쉬지 않는다.’고 말하며, 그것을 우리 유학의 주경의 학에 견줍니다. 


又曰飭躬薄食。無踰濫之念。比之吾儒克己之工也。

또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거친 식사를 하며 유람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우리 유학의 극기하는 공부에 견줍니다.


實爲此學者。雖其門路異而爲善則同。豈不可貴。

사실 이 학을 하는 이들은 비록 그 문과 길은 다르지만 선을 행하는 것은 같으니 어찌 귀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但世道巧僞。人心難測。

단지 세상의 도는 교묘히 속이는 것이고,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設有一箇妖人。假冐倡言東有一天主降。西有一天主降。

만약 일개 요사한 사람이 있어 ‘동쪽에 한 천주가 내려왔다’, ‘서쪽에 한 천주가 내려왔다’고 거짓으로 떠들어댄다면


民心習於誕妄。以爲實然而風從矣。

민심은 탄망한 것에 익숙하여 참되다고 여겨 바람에 휩쓸리듯 따를 것입니다.


當此之時。爲此學者。其能曰我正而彼邪。我實而彼僞乎。

그때에 가서 이 학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는 바르고 저들은 사특하다. 우리는 진실하고 저들은 거짓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自不覺爲聖學之蟊賊亂賊之髇矢而甘心焉。哀哉哀哉。

스스로 성학의 모적이 되고 난적의 효시가 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달게 여기니 슬프고 슬픕니다.



1) 『論語』,  「述而」, “子不語怪力亂神.”

2) 후한 말 영조대 태평도 창시자로 황건의 난의 주모자이다. 『後漢書』 권8, 「靈帝記」.

3) 당 말 의종대 서주의 군인으로 868~869년간 반란을 일으켰다. 『新唐書』 권9, 「本紀9 · 懿宗」.  

4) 당 말 희종대 농민반란 지도자로 881년 장안을 점령하고 대제(大齊)를 세웠다. 『新唐書』 권9, 「本紀9 · 僖宗」.

5) 송 인종대의 반란 지도자로 “석가불은 쇠약하여 시들 것이며 미륵불이 세상을 가질 것”이라는 참언을 퍼뜨리며 반란을 일으켰다. 『宋史紀事本末』 권6, 「貝州卒亂王則」. “俗尙妖幻 相與習為五龍滴淚等經及諸圖䜟書言 釋迦佛衰謝彌勒佛當持世 則之與母訣也”

6) 喫菜事魔(끽채사마=마니교)의 교도로서 북송 말 강남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宋史紀事本末』 권12, 「方臘之亂」 ; 『星湖僿說』 권20, 「經史門」  方臘.

7) 명말 한산동, 한림아 부자에 의해 일어난 봉기로 미륵의 하생과 명왕의 출세를 선언하였으며, 명 태조 주원장도 이 운동과 관련을 맺고 있었다. B. J. ter Haar, The White Lotus teachings in Chinese religious history, (Honolulu :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9) : 송유후 역, 『중국역사사의 민간종교운동 : 백련교의 실체와 그 박해』 (신서원, 2007), 193-204.

8) 명말에 각지에서 봉기하여 게릴라전을 전개한 이자성(李自成), 장헌충(張獻忠), 라여재(羅汝才) 등의 무장농민군이다. 『明史』 권309, 「列傳197 · 流賊」.

9) 가신(家神)을 모신 상자인 듯, 다음과 같은 용례가 있다. 『寒水齋先生文集』 권33, 「墓表」, 仲弟 尙明 墓表追記, “(고인은) 무축(巫祝)을 싫어하여 부녀자들에게 가까이하지 말도록 경계하였다. 언젠가 협촌(峽村)에 피우(避寓)해 있을 때에는 그 집에서 받들던 신상(神箱)이 저절로 땅바닥에 떨어져 버렸고, 그후 다른 집에 피우할 적에도 그러하였으니, 여기에서 그 사람됨을 볼 수 있다.(不喜巫祝 戒婦女勿近 嘗避寓峽村 其家所奉神箱 自墜於地 後寓他舍亦然 此可以見其人矣)”

10) 신항아리 혹은 신단지. 조선시대 가신(家神) 신앙에서 주로 터주, 제석, 세존, 인업(人業) 등을 모시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赤松智城〮 · 秋葉降, 『朝鮮巫俗の硏究』 下卷(東京:大阪屋號書店, 昭和12-13 [1937-38]) : 심우성 역, 『조선무속의 연구』  下 (동문선, 1991), 150-153.

11) 『英祖實錄』 영조34년 5월 계묘, 『國朝寶鑑』 권64, 영조 34년 5월조 등에 기록이 보인다. 실제로는 신계현의 영무 만이 아니라 황해도 금천, 평산, 신계에 무녀 4명이 있어 신사를 배척하고 백성들이 스스로 무당의 신물을 파괴하였다고 한다.

12) 『近思錄』 권2, 「爲學」, “君子主敬而直其內 守義以方其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