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학 잡담/한국기독교

한국산 "신본주의" 예전부터 숙제처럼 생각하고 있던 의문이 있다. 주로 보수 개신교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인본주의"의 반대말로서의) "신본주의"라는 용어가 대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말은 목사들의 설교에서나 일상 용어에서 세속문화나 과학적 세계관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근본주의적 세계관을 옹호하는 표현으로 즐겨 사용된다. 신본주의-인본주의라고 하면 운율이 잘 맞는 것 같지만, 사실 "인문주의"라고도 번역되는 humanism에 대응되는, 신을 중심 또는 우선으로 삼는 사상이라는 서구어 단어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최근에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먼저 한국에서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30년대 즈음으로 보인다. 1930년 10월 5일자 동아일보에는 당시 경성에서 이루어지는 .. 더보기
"하나(1)+님 = 유일신"설에 대해 개신교에서 쓰는 “하나님”이라는 표기를 두고, “하늘+님”이 아니라 “하나+님” 즉 유일신이라는 뜻이니까 “하느님” 같은 걸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있다.용어야 만들어 쓰기 나름이지만 음운사적으로는 전혀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19세기 이전에 아래아(ㆍ) 표기가 살아 있을 때 ‘1’이라는 뜻의 ‘하나’는 언제나 “ᄒᆞ나”라고 썼고, ‘하늘’이라는 글자는 언제나 “하ᄂᆞᆯ”이라고 썼다. 조선시대 한글문헌 전체를 범위로 놓고 봐도 이 구분에 예외를 찾기는 어렵다. 이상억의 에서 다루고 있는 15-19세기의 문헌들에서 “ᄒᆞ나”(一)이라는 표기는 3260번, “하ᄂᆞᆯ”(天)이라는 표기는 2585번 등장한다. 시기나 자료에 따라 사잇소리 "ㅎ"의 유무같은 차이는 있어도, 이 두 가지가 혼동되는 경.. 더보기
한국의 '시몬 마구스'들 한국의 ‘시몬 마구스’들 한 승 훈 1917년에 출간된 영국선교사들의 기록인 The English Church Mission in Corea에 실린 세실 허지스(Cecil Hodges)의 보고에는 무속과 귀신 쫓는 행위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들이 나온다. 세례명이 요한이었던 개종자가 죽자 그 가족들이 배교를 하였다. 그런데 가족 중 한 사람이 병에 걸리자 부른 무당은 죽은 아버지의 영이 들린 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요한의 영인데, 너희들이 신앙을 버리고 나를 위하여 기도를 하지 않으니 편히 쉴 수가 없구나. 즉시 회개하라.” 무당이 병의 원인을 기독교 신앙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셈이다. 처방 또한 충격적이다. 이 가족은 무당의 지시에 따라서 귀신을 섬기는 제구와 위패를 묻거나 태워버린다. 이.. 더보기
동아시아적 기독교 용어들 동아시아 또는 한국에서만 쓰는 기독교 용어들을 보면 서구어로는 번역도 안 되는 것들이 종종 보인다. 이런 말들이 대체 언제부터 쓰였는지, 어디에서 누가 처음 썼는지 추적해 보면 못 찾을 것도 없겠지만 귀찮아서... 일단 생각나는 거 두 개를 써 보겠다. 아시는 분 좀 알려주세요.1. 구교/신교프로테스탄트를 신교 또는 개신교, 가톨릭을 구교라고 하는 것은 그냥 번역이 아니다. 서구어에서 이들을 old/new religion 이라는 식으로 부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트를 '저항교'라고 하면 영 이상하지만 직역에 가까워지는 셈이다. 근데 구교/신교라는 말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는 꽤 오래 궁금해 했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2. 신본주의(/인본주의)한동안 잊고 있다가 최근에 동성애 문제에 대한 혐오발언에.. 더보기
“알려지지 않은 신”과 “우상에게 바친 고기”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아테네의 시민들이 “종교심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평가하면서, 그들이 예배하고 있는 대상 중에 ‘알려지지 않은 신’이 바로 자신이 말하는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이교의 희생제의에 바쳐진 고기를 먹어도 되는가 하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난제를 다룬다. 그의 결론은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에게 우상이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제물로 바쳤던 고기를 먹어도 안 될 것이 없으나, 지식이 모자란 다른 이들을 위해 삼가라는 것이었다.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는 비유대교 지역에 선교를 하려 했던 바울계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고민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것은 1세기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너선 스미스가 지적하고 있듯이 근대 이후 다른 종교문화를 접하게 .. 더보기
이교의 성현을 배치하는 법: 최병헌의 『성산명경』과 길선주의 『만사성취』 단테는 『신곡』에서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등 고대의 철학자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살라딘과 같은 군주들, 호메로스, 오비디우스 등 시인들, 아이네이아스, 헥토르 등 영웅들이 모두 림보의 주민이 되었다고 묘사한다. 이들은 ‘선한 자’들이지만 기독교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혹은 그리스도 이전의 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오게 되었다. 물론 분명한 죄나 악덕이 있는 인물들은 림보가 아닌 더 깊은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지만, 이 인물들은 이교도임에도 불구하고(심지어 살라흐 앗 딘은 무슬림이다.), 기독교가 점거한 저승에서 고통을 받지 않고 편안한 대우를 받고 있다. 단테와 같은 르네상스기의 지식인들에게 있어 동경의 대상이자 문화적 모범인 고대인들을 단순한 이교도들과 똑같이 취급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 더보기
“사랑의 리퀘스트”와 “사랑과 전쟁” : 20세기 초 선교문학들 최혜월이 Gender and Mission Encounters in Korea: New Women, Old Way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9)의 5장에서 다루고 있는 선교문학작품들, 특히 여성 선교사들에 의해 작성된 소설들은 몇 가지 TV 프로그램의 양식을 떠올리게 한다. 애니 베어드(Annie Baird)의 Daybreak in Korea는 선교지 한국 여성의 비참한 상황을 동정적으로 묘사하면서 본국의 지원을 요청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사랑의 리퀘스트”와 같은 모금방송과 닮았다. 또한 엘라수 와그너( Ellasue Wagner)의 The Concubine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의 부부관계의 파탄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사랑과 .. 더보기
번역과 악마화 신크레티즘에 대한 논의들은 대개 종교들이 ‘뒤섞여있다’거나 자신의 종교가 이방적 요소들로 ‘오염되었다’는 형태를 띠기 마련이다. 전자를 신크레티즘에 대한 중립적 태도, 후자를 경멸적 태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느 쪽이든 그러한 혼합/오염이 실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규명하기는 쉽지 않다. 브리짓 마이어(Brigit Meyer)의 “신크레티즘을 넘어서(Beyond Syncretism)”가 아프리카 독립교회의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의 관점에서 주목되는 것은 식민/선교 모국의 선교사와 개종자인 아프리카인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아프리카인의 전유 양식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독교 용어들이 아프리카 언어로 ‘번역’되면서 그 의미값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기존 종교의 영적.. 더보기
개고기와 미카엘, 그리고 천지개벽(天地改闢) 『주교요지』와 『황사영백서』는 각각 교리문답과 박해기록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거기에는 저자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당시 종교문화의 구체적인 단면 또한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조선의 초기 천주교인들이 천주교를 받아들였던 방법, 그리고 그 바탕에 있었던 조선후기 한국종교의 모습이기도 하다. 1. 기존 문화와 천주교의 만남이 가장 인상적으로 드러나는 장면 중 하나가 『황사영백서』에 묘사된 경신년(1800) 부활절의 모습이다. 여주의 천주교인들은 개를 잡고 술을 빚어, 길가에 앉아 희락경(부활 삼종경)을 외고는 술통을 두들기며 노래를 불렀다. 이것은 엄숙한 부활절 미사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마치 동제(洞祭)의 풍경 같다. 오늘날에도 한국 가톨릭에서 개고기는 종종 ‘순교자의 음식’이라고 불린다. 신학생들의 특식으로 제.. 더보기
원시종교, 민속종교, 민족종교: 제국주의 시대가 ‘발견’한 종교들 ‘한국종교’를 전공하고 있다고 소개할 때마다, 종교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종종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한국에 고유한 종교가 있는가?”라는 것이다. 기독교, 불교, 유교 등 ‘외래 종교’를 제외하고 나면 ‘한국종교’라 부를만한 것이 뭐가 있겠느냐는 질문이다. 가끔은 ‘샤머니즘’이 종교냐는 의문이 따라오기도 한다. 때로는 유교는 사회제도이자 윤리이고, 불교는 철학이므로 종교가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도 받게 된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종교인지 아닌지 모호한 것들을 제외해 나가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기독교 정도가 된다. 이것은 치데스터가 말하는, 18세기 이전 유럽인들이 비유럽지역에 대해 가졌던 ‘종교 없음’에 대한 인식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19세기의 학술적 창안물인 종교 개념을 수용하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