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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잡담/한국기독교

원시종교, 민속종교, 민족종교: 제국주의 시대가 ‘발견’한 종교들

한국종교를 전공하고 있다고 소개할 때마다, 종교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종종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한국에 고유한 종교가 있는가?”라는 것이다. 기독교, 불교, 유교 등 외래 종교를 제외하고 나면 한국종교라 부를만한 것이 뭐가 있겠느냐는 질문이다. 가끔은 샤머니즘이 종교냐는 의문이 따라오기도 한다. 때로는 유교는 사회제도이자 윤리이고, 불교는 철학이므로 종교가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도 받게 된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종교인지 아닌지 모호한 것들을 제외해 나가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기독교 정도가 된다.

이것은 치데스터가 말하는, 18세기 이전 유럽인들이 비유럽지역에 대해 가졌던 종교 없음에 대한 인식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19세기의 학술적 창안물인 종교 개념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표준적인 종교인 기독교의 범주들이 타자의 이교적, 미신적인 문화의 종교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그런데 이 경우는 한국인들 자신이 자문화의 종교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샤머니즘이라는 표현이 한국인 대중 스스로 한국종교를 서술하는 범주가 되어 있다는 것도 흔히 확인할 수 있다. 치데스터는 비교종교학에 수용된 토착적 어휘목록으로 서아프리카의 페티시, 북아메리카의 토템, 멜라네시아의 마나 등을 들고 있는데, 여기에는 마땅히 중앙아시아의 샤먼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유럽인들이 원시종교를 서술하기 위해 바로 그 원시의 땅에서 발굴해 낸 개념이 한국인 스스로의 종교문화를 말하기 위해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원시종교, 미개인의 종교에 대한 언어들은 유럽 내의 미개인들의 망탈리테에 대한 담론에도 즉각 적용되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낭만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문명 속의 원시종교인 민속종교(folk religion)와 민중종교(popular religion)에 대한 발견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성과는 다시 타자의 종교를 서술하기 위한 어휘목록에 포함되었다. 제임스 존스(George Heber Jones)는 1902년에 쓴 "The Spirit Worship of Koreans"에서 한국종교의 체계를 서술하면서 한편으로는 샤머니즘’, ‘페티시등의 원시종교 담론에서 생산된 용어들을 쓰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고블린’, ‘데몬’, ‘엘프’, ‘드래곤’, ‘잭오랜턴’, ‘브라우니’, ‘노움등 유럽의 민속종교적 요소들과의 비교를 행하고 있다.

존스의 글에는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그는 한국의 용 숭배를 설명하면서 이를 유럽종교에서의 드래곤에 대한 상반된 인식과 비교하고 있다. ‘아리아인들의 신화에서 드래곤은 영웅들에게 의해 퇴치되어야 할 무질서와 파괴, 죄악 그리고 이교(paganism)의 상징이다. 그러나 기독교 이전의 우리 조상’, 즉 켈트족, 앵글로족, 색슨족에게 있어서 드래곤은 왕과 왕권의 상징이었다. 헤르더, 괴테 등 낭만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19세기 유럽에서 민속종교는 기독교 이전의 민족적 정체성을 담고 있는 잔존물로 인식되었다. 이것은 유럽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세기 한국과 일본 등에서는 민속속에서 외래종교가 유입되기 이전의 민족 고유문화를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이렇게 해서 발견된 민족종교는 아득한 고대에 연원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의 민족성까지 규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제국주의 시대의 비교종교학 담론은 유럽과 비유럽 모두에서 타자인식만이 아니라 자문화에 대한 인식 틀까지도 제공하였다. 그것은 쌍방적인 문화 접촉의 산물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