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에 대한 문화사적 연구들이 주는 교훈이 있다. 인간의 오독은 매우 일반적이며 자연적인 현상이고, 텍스트를 저자의 의도와 맥락을 고려하며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특수한 훈련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 사례는 매우 극단적이지만, 오독이 단순히 지적 수준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메시지의 발신자가 악의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자, 해석에 필요한 사고 과정이 정지되어 버렸다.
"읽기"라는 건 대단히 차별적인 정신작용이다. 종교경전이나 호의를 가진 저자의 글은 아무리 모순적이고 자기 생각이랑 달라도 전적으로 부정되지 않는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어떻게든 "의미"를 찾아 "해석"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경전에 대한 주석들은 많은 경우 대단히 창의적인 오독들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적대적인 저자에 의해 생산된 텍스트라는 전제가 있으면 오독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이루어진다. 이 경우, 마음은 텍스트의 행간에 대한 추론들 가운데 가장 악의적인 해석을 선택한다. 이른바 비판적인 독서라는 것도 이런 마음의 작용을 체계화하고 훈련함으로써 저자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 일이다.
그런 훈련이 없는 경우에 나타나는 현상이 이거다. "한겨레는 나의 적이다. 그러므로 한겨레에 실린 만평은 마찬가지로 나의 적인 박근혜에 우호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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