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한, "근대는 '유라시아의 합작품'이다" (<프레시안>, 2017. 5. 26.)
17세기 중반 이후 꽤 많은 유럽인들은 중국이 한때 이집트의 식민지였다고 생각했다. 표의문자 쓰고, 전제군주정이고, (대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미술 양식도 비슷하고.
위의 글에서 묘사하고 있는 바와는 달리, 당시 중국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유럽의 중국빠 지식인들은 중국사상 자체에 심취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계몽적 지향을 정당화하고, 표현해 줄 수 있는 이국적 자료가 필요했던 거다.
유럽의 중국뽕은 금방 사그라들었지만, 이런 류의 환상은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의 인도뽕, 20세기의 일본(젠)뽕으로 이어졌다. 계몽사상이 중국 덕분에 나온 거면, 19세기 이후 서구철학은 인도 덕분에 만들어진 거고, 현대철학은 모두 스즈키 다이세쯔로부터 비롯한 것이 된다. 뻥을 쳐도 정도가 있지.
(2017. 5. 29. 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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