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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잡담

영성과 사회변혁

 

 도널드 밀러는 전세계적인 진보적 오순절운동(Progressive Pentacostalism)의 성장에 대해 이와 같이 평했다. "해방신학은 가난한 자들을 선택했지만, 가난한 자들은 오순절 운동을 선택했다." 오순절 운동에 대한 전통적인 비판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사회적, 구조적 문제를 개인적, 내적인 것으로 환원한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오순절 운동은 개인의 영적 구원과 현 질서 내에서의 물질, 건강의 '축복'만을 기원하게 된다. 비슷한 비판은 한국의 진보적 기독교 신학 내부에서도 발견된다. 한국에서 민중신학의 성립과 이론적 발전은 오순절 운동의 폭발적 성장과 그 시기가 대략 일치한다. 1, 2세대 민중신학자들은 오순절 운동 교단들과 그 영향을 받은 주류 개신교 교회들에 대해 '영지주의', '기복신앙', '샤머니즘' 등의 표현을 쓰며 비판하였다. 여기에 담긴 함의는 종교가 '민중의 아편'으로서 감정적 만족, 미래의 풍요, 복된 내세를 약속하는 데 몰두하면, '실제'의 모순에 대해서는 눈을 감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 기대하는 몇 가지 중요한 기능을 스스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민중교회'에는 '민중'이 없고 지식인들만 넘치는 기이한 상황이 이루어졌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오순절 운동에서 사회 선교가 강화되고 능동적인 사회봉사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 하다. 그러나 '진보적' 오순절 운동이 곧 정치적 지향의 진보성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 듯 하다. 밀러의 다른 책에서 미국의 '새로운 패러다임 교회'를 다루면서 언급된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경우 이들에게 있어서 사회 선교는 스스로와 타인의 영적 변혁을 이루기 위한 일로 보인다. 그것은 구조적인 문제, 체제 자체의 급진적인 변혁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 만약 제3세계 오순절 운동의 사회참여가 좀 더 다양하고 파격적인 것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그들을 둘러싼 고통스런 사회적 상황이 좀 더 절실하고 극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순절 운동에는 엑스타스적인 종교경험이나 가시적 은사주의를 혐오하는 지식인들의 진보적 신학운동과는 다른 의미에서의 '제한'이 보인다. 그것은 경제적, 정치적 억압이나 권력관계의 재편과 자신들의 강렬한 종교경험을 별개의 것으로 보고자 하는 시각이다.


 아직까지 현대 기독교 운동 가운데 강렬한 종교경험과 (사회봉사 프로그램이 아닌) 정치적 직접행동이 결합된 사례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20세기 초 아프리카와 남태평양,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종교운동들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 과정에서 영적 체험과 집단적 의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후기 카고 컬트, 고스트 댄스, 동학 등에서 나타나는 영적 체험의 강조와 적극적, 많은 경우에 폭력적인 사회변혁 시도 사이의 관계는 대단히 직접적이다. 이런 운동들이 흥기한 지역과 오순절 운동이 급격히 성장하는 지역 사이의 상당한 일치는 특정 형태의 종교경험에 대한 갈망이라는 문화적 기반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서구적 근대 이후 도입된 오순절 운동의 경우 개인적 영성과 사회 구조 사이의 분리 의식이 표면적 교의에서든 잠재적 심성에서든 강하게 존재한다. 이 분리는 일종의 안전핀이면서 방아쇠이기도 하다. 어떤 계기로 그 경계가 무너질 경우, 이들 지역에서 예측하기 힘든 정치-종교적 현상들이 발생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