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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잡담

민중교회의 '성장'과 진보적 영성의 문제


 2000년대 중반에 나는 종교사회학 수업 과제를 위해 명동 향린교회를 조사하게 되었다. 약간의 문헌조사 후 당시 홍근수 목사에 이어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조헌정 목사와의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기획안을 담당교수께 제출했다가 의외의 코멘트를 들었다. 그것은 왜 민중교회가 성장하지 못 하는지에도 주목해 보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도널드 밀러의 책이 출간된 시기 즈음이었던 영향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나에게 이 문제는 대단히 낯설었는데, 내가 연구대상을 민중교회로 잡은 것은 성장, 확장지향적인 대다수 한국 개신교 교회와의 차이에 관심이 갔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나에게는 이들이 성장하지 못 하는것이 아니라, ‘안 하는것일 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실제로 조사해 본 결과, 향린교회는 성장을 못 하는것도 아니고, ‘안 하는것도 아니었다. 대형교회들의 폭발적인 성장에 비길 바는 못 되겠지만, 신도 수는 완만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노방전도와 같은 활동은 일체 없었지만, 여타의 사회운동 단체나 언론에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거나, 강연회나 민중신학 세미나 등과 같은 내부의 프로그램들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새로운 패러다임 교회들의 사례와 같이 일정 정도 이상 신도가 모이면 분가를 시도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이미 강남향린교회가 분가한 지 여러 해가 지나 있었고, 다음 분가(현재의 들꽃향린교회)도 준비 중이었다. 최근에는 또 하나의 분가교회인 섬돌향린교회가 세워졌으며, 같은 교단에 속해 있는 김제의 들녘교회와의 제휴도 이미 행해지고 있었다. 이들 분가교회와 모교회 사이의 관계는 재정적, 프로그램 운영적인 면에서 독립적이었고 우수한 부목사와 적극적인 신도들을 떼어준다는 점에서도 갈보리나 빈야드와 유사했다.


 의례에 있어서, 전자음악의 사용은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상당한 실력을 갖춘 국악찬양팀이 있었다. 이들은 자작곡이 상당 부분 포함된 국악찬송가집을 발간해 여타 교회에 보급하고 있었다. 또한 전자음악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중장년층 이상의 신도가 많은 모교회의 경우이고, 상대적으로 청년층이 많은 분가교회들의 경우는 밴드를 갖추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형교회들에 비하면 현대적인 CCM이나 복음성가의 사용은 적은 편이었고 오히려 전통적 찬송가를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반면, 의례 자체에서는 파격이 보인다. 예배 시작할 때 징을 치거나(이것은 다른 민중교회들에서도 보인다), 예배에서 평신도 설교를 허용하거나, 축도를 목사가 아니라 모든 회중이 함께 하는 것 등이 그렇다. 종려주일의 경우,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엄숙한 이미지의 조헌정 목사가 설교 중간에 삐에로 복장으로 갈아입고 춤을 추며 단상에 오르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http://blog.daum.net/gbbae56/9657930



 아마 내가 당시에 밀러의 책들을 읽었다면, 한국의 민중교회가 미국의 새로운 패러다임 교회들과 비교할 만한 혁신을 시도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성과 또한 이루고 있다고 분석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중교회에 민중은 없고 엘리트만 있는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신자들의 경제수준이나 학력은 높았고, 설교는 민중신학과 현대철학적 논의들을 시사적인 현안과 관련지어 제시하는 지적인 것이었다. 많은 보수적 교회들이 채택하고 있는 오순절운동적 요소는 극단적으로 적어서, 음악을 통해 영적 고양을 유도하려는 시도는 극히 적었고 방언기도는커녕 통성기도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여성주의적, 생태주의적 영성에 대한 강조가 눈에 띄었다.


 이것은 밀러가 다루고 있는 진보적 오순절운동이나 해방신학과는 또 다른 경향이다. 이들의 사회참여는 진보적 오순절운동이나 새로운 패러다임 교회들과는 달리 개인적 구제나 봉사활동보다는 확실히 구조적 악이나 폭력에 대한 저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교회 차원에서 각종 사회 현안에 연대하고 있으며, 신도 개개인들도 어딘가의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해방신학에 비하면 훨씬 비폭력적인 모델을 채택하고 있으며, 맑스주의보다는 기독교 전통 내부나 여성주의, 생태주의, 민족주의적 담론 속에서 실천을 위한 이론적 기반을 얻고 있다.


 밀러가 전망하고 있는 진보적 오순절운동의 잠재력은 폭넓은 대중동원력과 반권위주의적인 평등성, 그리고 강렬한 종교경험을 통한 동기 부여 등에 있다. 그러나 이들 운동에서 나타나는 사회변혁적 성격은 대단히 제한적이다. 인간이 마주하는 고통과 억압의 근본적 원인을 제도적 폭력보다는 개인의 죄악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 민중교회는 남미 해방신학처럼 구조적 악에 주목하면서도 그 이상의 여러 가지 혁신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불확실한, 밀러의 표현을 빌리자면 원시주의적이면서도 포스트모던적인 영성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있다. 이것은 민중교회가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그러나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성장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이 될 것이다. 종교적 수요를 가진 한국의 진보적 엘리트들에게 민중교회는 조금씩 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다닐 교회를 찾는 대중들에게는 진입하기 버거운 곳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양적 성장의 문제만은 아니다. 민중신학과 민중교회운동은 7-80년대의 반독재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의 언어와 경험을 통해 형성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적극적인 참여자들은 이미 기성세대가 되었고, 높은 교육수준을 바탕으로 현 체제 속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만일 민중교회가 관료화되고 새로운 세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제도적, 물질적 기반이 약한 이 운동은 빠르게 쇠퇴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존 운동의 지향과 오늘날 요구되는 영적, 사회적 요구를 어떤 방식으로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이후 민중교회의 향방을 결정지을 것이다. 분가선교, 평신도목회 등 유연한 조직으로의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이 문제에 대단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