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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잡담

프롬과 나

지금은 거의 읽지 않지만, 10대의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상가는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었습니다. 영화평론가도 하고 있던 국어선생님의 소개로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거나 『소유냐 존재냐』 같은 책을 읽은 게 시작이었습니다. 종교와 정신분석학, 맑시즘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확실히 그의 영향이었습니다. 특히 집을 떠나 정신적으로 강한 불안정함을 느끼고 있었던 스무 살 무렵에 『사랑의 기술』은 일종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강한 영향을 준 것은 그의 사상적 자서전인 『환상의 고리를 넘어서』였습니다. 이 책은 Trient Press에서 1962년에 나온 “나의 신조信條 총서叢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시리즈는 제목 그대로 여러 당대 사상가들의 사상적 신조를 담고 있습니다. 프롬의 경우, 그는 프로이트와 맑스와의 만남이 자신의 사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밝히고 있지요.



 그의 해석에 따르면, 프로이트와 맑스의 사상의 근본적인 이념은 다음 세 가지 격언에 담겨 있다고 합니다.


 (1) 모든 일에 대해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인간의 일 중에 자신과 관련 없는 것은 없다.

 (3) 진리는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라틴어 격언인 (1)과 (2)는 모두 맑스의 좌우명이었지요. (1)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중세신학의, 데카르트에 의해서는 근대철학의 출발이 되기도 했고요. 나는 나중에 조나단 스미스Jonathan Z. Smith가 짐 존스Jim Jones의 인민사원(People's Temple) 사건을 다룬 글에서 (2)의 격언을 다시 만나게 되기도 했습니다. (3)은 다름 아닌 예수의 말입니다. 프롬은 이들을 “비판정신”, “휴머니즘”, “진실의 힘”으로 파악합니다. 인간은 적극적인 회의를 통해 마음이, 혹은 사회가 만든 환상을 깨고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거지요.

 나는 이런 기적과 같은 일을 학문이, 특히 인문학이 이뤄낼 수 있다는 비전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연하다 여기던 것을 근본부터 다시 바라본다거나, 인간의 마음이나 사회구조의 심연에 접근한다거나, 편견 없이 타자를 이해한다거나, 진실의 힘으로 세상을 바꾼다거나 하는 일 말입니다. 세상이 달라 보였습니다. 배우고 생각하고 실천할 것이 무한정 있기 때문에 사는 건 재미있는 일이 되었지요.


 “진실을 탐구하고 환상을 타파하면 통찰이나 지식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인간 자신이 변한다. 그 인간의 눈이 열리고 각성하며,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본다. 그 결과 현실에 직면하기 위하여 자신의 지성과 감정의 힘을 사용하여 발전시키는 방법을 배운다. 눈이 열림으로써, 비로소 인간은 리얼리스트realist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이 내가 공부를 시작하게 하고, 길을 잃을 때면 이정표가 되어 준 프롬의 생각입니다. 초학자初學者의 야망으로서는 좀 거창하지만, 한 삶의 주제로서는 그리 거대한 것도 아니지요. 또한 비판하고,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은 학문의 영원한 책무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