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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잡담

고려왕에게 보낸 교황의 편지




"교황, 1333년에 고려 충숙왕에게 서한 보냈다"


처음에 위의 기사를 보고 금속활자 어쩌구 하는 내용 때문에 "이런 재밌는 자료 가지고 국뽕 다큐라니"라고 한탄했는데, 링크된 영상은 생각보다 멀쩡합니다(좀 오글거리긴 합니다. 댄 브라운이나 김진명 원작 영화 보는 거 같아요). 라틴어를 배워두지 않아 화면에 얼핏 보이는 문서를 직접 읽을 수 없는 게 안타깝네요. 몇 가지 의문가는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1. "대여행의 시대"였던 14세기에 바티칸이 고려를 알고 있었고, 편지까지 보냈다는 것 자체는 그다지 충격적인 사실이 아닙니다. 13세기 중반에 카라코룸에 다녀온 루브룩의 여행기에 이미 고려에 대한 정보가 있었고, 이 편지가 작성될 즈음에는 몬테코르비노, 오도릭, 마리뇰리 등 선교사들이 대도에서 장기체류를 하기도 했으니까요. 
문제는 그 내용입니다. 유럽인의 입장에서 보면 "고려의 왕"이란 카안 울루스의 유력한 봉건귀족이었을 테니까 친선 차원에서 보낸 형식적인 외교문서일 가능성이 제일 크겠죠. 그렇다면 "하느님의 종"이니 "그리스도인들 잘 대해줘서 고맙다" 어쩌고 하는 부분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아마 몽골제국 전역의 칸들이나 복속국의 군주들 역시 비슷한 문구가 박힌 편지를 받았을 테니까요.


2. 이 편지의 수신자가 누구냐는 것도 궁금합니다. 기사에서는 1333년에 쓴 거니까 충숙왕이라고 한 모양인데, 이 시기 고려 정세는 장난 아니게 복잡합니다. 충숙왕의 재위기간은 1313-30, 1332-39년입니다. 중간에 잠깐 왕 노릇 하기 싫다고 아들 충혜왕에게 자리 물려주고 떠났기 때문에 2년이 빕니다. 물론 그 충혜왕이 한반도 역대 최악의 막장 패륜 군주라서 금방 복위하긴 하지만. 그리고 외부 세계에서 "고려왕"으로 인식될 수 있는 작위가 하나 더 있었는데 심양왕 혹은 심왕이 그것입니다. 이 작위는 대체로 고려왕이 겸하고 있었는데 하필 충숙왕 때에는 왕족인 왕고가 이 자리를 차지하고 충숙왕과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정까지 서유럽에 알려졌을 거 같지는 않네요. 그렇다면 저 편지의 가능한 수신인은 적어도 세 명이 됩니다. 실제로 당시 고려왕이었던 충숙왕, 정보가 전달되는 시간차 때문에 당시 왕으로 오인되었을 수 있는 충혜왕, 그리고 당시의 심양왕인 왕고까지. 저 "키지스타의 소쿠스"가 뭔지 알면 좋겠는데요.


3. 가톨릭쪽을 포함한 종교계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과연 14세기 당시에 고려에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느냐 하는 문제일 겁니다. 몽골 제국의 영향권 안에 있었으니 고려에 네스토리우스파 신자가 있었다고 해도 그리 신기할 건 없지요(흥미로운 문제이긴 합니다). 그러나 서유럽인 선교사가 들어갔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첫째로 1에서 말했듯이 "그리스도인들 잘 대해줘서 고마워요"는 외교적 수사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우리가 보낸 그리스도인들"이 저 영상에서 해석하는대로 편지를 보내기 이전부터 현지에 체류하던 유럽인들인지, 네스토리우스파를 포함한 그리스도인 일반인지도 모르겠네요. 심지어 편지를 "가져간" 사람들에 대한 환대에 미리 감사하는 문구일 수도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편지에서 말하는 "그곳"이 "고려"일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고려의 왕"들은 당시에 뻔질나게 대도(북경)를 들락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원 간섭기의 고려국왕은 제국 밖에 영지를 가진 군주이면서, 칭기스 일족의 부마이면서, 정동행성의 승상이었습니다. 유럽인들이 "고려의 왕"과 접촉했다면 그는 한반도의 왕궁에 앉아 있는 국왕이 아니라, 카안의 궁정에 있는 고위 관리로 인식되었을 겁니다. 기사에 의하면 편지를 전달한 니콜라스의 목적지도 대도였습니다.


뭐, 다큐 제작자들이나 가톨릭 교회사 연구자들이 기대하는 바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흥미로운 자료임에는 분명합니다. 어서 전공자들이 붙어서 재밌는 얘기 많이 해 주시면 좋겠는데 말이죠.


(2016. 10. 1. 정치종교사 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