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현대 세속국가에서 전통적인 제도종교를 배경으로 종교적인 지향을 실현하려고 하는 정치집단은 성공하기 어렵다. 근대세속국가라는 체제 자체를 뒤집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 이란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혁명이 필요하다.) 반면 탈제도적 영성, 그러니까 서구의 "뉴에이지"나 일본의 "신 신종교" 같은 것은 보다 손쉽게 기존의 정치세력에 올라탈 수 있다.
박근혜 정권은 그 모범적인 사례로 볼 수 있는데, 그 종교적 지향은 거대 보수정당을 숙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가끔씩 우주니 혼이니 에너지니 하는 언어가 돌출될 뿐이다. 사람들은 최태민-최순실-박근혜를 잇는 종교적인 뉘앙스에 당황하면서도,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곤란해한다. 통일교, 국선도, 심지어 신천지와 연결시키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비슷비슷한 타자를 한데 뭉퉁그려서 문제를 단순화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오히려 박근혜 집단의 종교적 지향은 앞서 열거한 신종교들, 그리고 대중문화 일반에 퍼져 있는 통속적인 영성운동들과 동일한 재료와 형식을 사용하는, 독자적인 구성물로 보는 게 옳다.
큰 선거 때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종교또라이들(최태섭 의 용어)은 그래서 서툴다. 제도종교의 후광을 쓰거나, 자기 고유의 종교적 언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즉각적인 반발을 일으킨다. 이를테면 기독교정당을 만드는 것보다는 (조지 부시 일가처럼) 기존 정치세력의 형식에 근본주의적 기독교인이라면 반응할 수밖에 없는 언어나 구도를 슬그머니 올려놓는 게 더 세련된 방법이다.
물론 박근혜 정권의 경우, 정권 획득 과정에서 이 전략의 영향은 미미했다. 대중이 박근혜를 선택한 것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슬로건에 담긴 영성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그가 박정희의 딸이어서일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박근혜의 종교적 지향에 있어서는 꽤 서글픈 일이다. 자신은 우주적인 규모의 새로운 영성을 설파하고 있는데, 대중은 (주로 신동욱과 허경영의 "공화당"이 내세우는) 박정희 컬트에 반응했기 때문이다.
2016. 10. 17. 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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