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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잡담

역사학자의 시대극 읽기

로버트 단튼의 The Kiss of Lamourette (한국어역 제목은 『로버트 단튼의 문화사 읽기』)에는 단튼이 프랑스 혁명기를 다룬 TV드라마의 대본을 감수한 보고서 한 편이 실려 있다. 드라마 PD에게 보낸 편지 형식이다. (언제 방영된 어느 드라마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출판 시기가 1990년이니, 적어도 80년대 이전 드라마일 것이다.)


흔히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많은 역사 연구자들은 자기가 전공하는 시대가 드라마, 소설, 영화 같은 대중매체의 소재가 되면 고증 문제에 있어 그리 꼬장꼬장하게 굴지 않는다.


이를테면 조선시대에 환도를 어떻게 찼느냐, 저고리 길이가 어디까지 왔느냐 등이 적잖이 신경쓰이긴 하지만, 그런 문제에 분노하는 것은 오히려 아카데미 밖에 있는 역덕들이다. 전공자라면 오히려 좋은 소재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대중매체의 상투적인 문법(막장드라마, 가족로맨스, 신데렐라 스토리 등)에 맞추느라 재밌는 배경이나 사건들을 재미없게 그려버리는 것에 불만을 가질 것이다.


단튼의 글 또한 그런 종류의 분노가 가득 담겨 있다. 킥킥대며 읽었던 부분들을 옮겨본다.[대괄호]로 표시된 부분이 인용구, 그 안에 있는 "따옴표"는 드라마 대본이 인용된 부분이다.


[내가 아이비리그의 교수이긴 하지만 속물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폴레옹과 조세핀에 관한 텔레비전 대본의 검토를 요청했을 때 나는 기꺼이 응했습니다. 내가 연구하는 시기를 할리우드 판본으로 보는 것도 흥미로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다큐드라마"를 위한 대본이라고 경고했기에 나는 가공의 대화를 발견하게 되리라 예상했고 가급적이면 한 사람의 교수로서 현학적이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나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했습니다. 그리고 첫 쪽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클로즈업-참수된 머리

놀라 벌어진 입, 말끔히 잘려 피투성이로 목에서 늘어져 있는 동맥과 힘줄, 뒤집힌 눈꺼풀.

화면 밖에서 군중의 함성이 커진다."]


[그러나 당신의 대본 작가는 스크린을 피로 도배했습니다. 무엇을 읽었든 표준적인 역사에서 충분한 피를 발견하지 못할 때는 피를 만들어냈습니다.]


[당신의 작가는 안 그랬으면 실제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 앞에서 졸고 있었을 관중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데에 자신감을 얻은 듯 조세핀을 마차에서 끌어내 시체들이 즐비한 전쟁에 내던집니다.]


["조세핀의 관점- 시체에 앵글을 맞춘다.

난자된 시신. 그녀의 손이 난자된 얼굴 위에 있다."

이 순간, 짐작건대, 전국의 부모가 잠에서 깨어나고 아이들은 화면에 빠짝 붙어 있을 것입니다. 교실에서 역사는 이렇지 않습니다.]


[대본에 폭력밖에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선정적인 장면도 꽤 많습니다. 역시 기대했던 바죠. 조세핀이 보나파르트의 정부가 된 테르미도르 반동의 시기는 공화국의 청교도주의에 대한 반동의 시기였으니까요. 여성들은 속이 훤히 비치는 가운 차림으로 무도회를 누비며 연인과 행운을 낚았습니다. 물론 상류 사회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즉 빈민들은 인플레이션과 굶주림으로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기요틴을 위한 '오르가슴적' 즐거움을 제공했던 초기 장면을 제외하고 대본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옷을 벗거나 "슬픔보다 사랑을 나눈 후 헝클어지고 생기 넘치는 모습의" 그녀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구실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했습니다.]


[가장 원색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은 조연들의 몫입니다. 아마도 주요 인물들을 잠자리에 들게 할 때면 작가들의 대사 능력이 휘청대기 때문인 듯합니다.

"보나파르트: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날 사랑해?"]


[당신의 작가가 혁명 정치를 어떻게 취급했는지 살펴봅시다. 그는 관객들이 당과 쿠데타에 관한 복잡한 설명과 씨름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치를 배경으로 몰아냈습니다. 그 점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강의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배경이 올바르면 안 되는 것일까요?]


[당신의 작가는 그런 것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좌우, 혁명과 반혁명의 구분-혁명가들에게 생사의 문제-에 고심하는 대신 모든 것을 배경으로 밀어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상황 설정 숏, 틀어진 각도"와 "무대 뒤에 포효하는 폭도"에 다름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아무리 떨쳐버리려 해도 결국 제가 학자처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역사가로서 저는 역사를 상상의 구성물, 충분히 생각하고 끝없이 다시 작업해야 할 어떤 것으로 보는 사람들과 같은 입장입니다. 저는 역사가 우리의 공상에 일격을 가할 어떤 것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단지 모든 것이 '담론'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사실들을 무시할 수 없으며 사실의 발굴이라는 문제를 면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텔레비전 시청자들의 나라에서 최악의 역사는 다큐드라마로서의 역사일 것입니다.]


감상: 미국 역사 드라마는 그때도 그랬구나.




2017. 10. 26. 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