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도로명주소라는 게 정말 바보 같은 정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네 도서관에서 내가 사는 동네 지방지를 읽으니 옛날 지명들만 나와 있어도 어디가 어딘지 대충 알겠다. 도로명을 정할 때 "~동", "~리" 등의 근대 행정구역명으로 바뀌기 이전의 지명들을 반영한 결과다.
이 문제를 좀 더 복잡하게 하는 건, 과거의 전통적 지명이 현재의 토착지명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특히 최근에 개발되어 이주 인구가 많은 지역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근대 지명이 토착지명이고, 도로명으로 채택된 전통 지명 쪽이 정부에 의해 행정적으로 부과된 지명이다. 현지에서 과거에 사용되던 원래의 지명을 "복원"했더니 현재의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낯설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사례는 다른 영역에도 많이 있다. 이를테면 20세기 후반 이후 태어난 한국인에게 있어서 "한국적"이라고 불리는 대부분의 (재구성된) 전통문화들은 엄밀히 말해서 외국문화에 가깝다. 그건 타자의 문화고, 학습해야 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서양식 음악이 표준이고, 국악 음계는 훈련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다. 그런 점도 있고 해서 나는 한국학 연구에 있어서 한국인이 외국인보다 특별히 메리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2017. 7. 19. 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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