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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잡담

이능화와 용과 공룡의 알

이능화와 용(龍)과 공룡의 알



 일제시대의 학자인 이능화의 종교 연구서 중에 하나인 『조선신사지(朝鮮神事誌)』(1929)의 17장은 신라의 신화들을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6절, 용(龍) 신화를 다루고 있는 부분을 읽다가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이능화는 『삼국유사』의 탈해왕조에서 석탈해가 자신의 내력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인용한다.


탈해가 스스로 말했다. “나는 본래 용성국(龍城國) [일연의 주 : 용성은 왜의 동북쪽 1천 리에 있다] 사람으로, 우리나라에는 일찍이 28용왕(龍王)이 있었는데 사람의 태에서 나왔으며, 5, 6세 때부터 왕위에 올라 만민(萬民)을 가르쳐 성명(聖命)을 올바르게 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한 이능화의 태클.

 

용이 사람의 태(胎)에 의해 태어났다는 석탈해(昔脫解)의 이야기는 비록 신화이긴 하지만 불합리하다. 용이라는 동물이 과연 존재한다면 틀림없이 뱀 종류일 것이다. 뱀은 알에서 나는 것이므로 용도 알에서 태어나는 것은 틀림없는 이치이다.


 그러니까, 용은 비록 신화 속의 동물이지만 뱀 종류(파충류)니까 알을 낳지, 태에서 태어나진 않을 거라는 말이다. 뜬금없이 왜 이런 소리를 하나 했더니, 이능화가 이렇게 글을 이어갔다.


근년 신문에 미국인 탐험단이 몽고 내지(內地)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용의 알 10여 개를 채득(採得)하였는데, 약 50만 년 전에 낳은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으아니 이능화 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용의 알이라니? 이것은 미국인 로이 채프먼 앤드류스(Roy Chapman Andrews)의 탐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앤드류스는 인디애나 존스의 실제 모델로도 알려진 20세기 초의 유명한 탐험가이다.



 존스 박사와는 달리 앤드류스는 고생물학자였다. 1884년생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위스콘신의 숲속을 다니며 생물들을 수집하고 자기 나름의 분류 체계를 만들어 연구하곤 했다. 이런 덕질의 결과,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 취직을 하고 동인도, 북극해, 중국 일대를 다니며 화석을 줍고 다니게 된다.

 그의 가장 큰 성과가 바로, 공룡의 알을 최초로 발견한 것이다. 사실 앤드류스의 처음 목표는 몽골의 고비사막에서 인간의 기원에 대한 실마리를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22년부터 1925년까지 사막을 해맨 결과, 그는 의외의 보물을 발견하게 된다. 사막은 고생물의 흔적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을 수 있는 자연 환경이다. 거기에서 앤드류스는 프로토케라톱스, 벨로시랩터 등 공룡의 완전한 골격 24개와 프로토케라톱스의 알 25개를 발견한 것이다.

 공룡의 화석은 19세기 초에 처음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알이 나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1923년에는 조선 내 언론에서도 이 사건이 보도되었다. 이능화 역시 신문을 통해 공룡의 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용”과 “공룡”을 혼동하고 있다. 이것은 이상하다. 이 시기 언론에서는 고생물인 공룡을 악어 비슷한 고생물로 설명하면서 “용”과의 관련성은 일체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룡(恐龍)”이라는 이름에서 용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기도 하다.


 공룡의 학명인 dinosaur는 1841년 영국의 고생물학자인 리처드 오웬(Richard Owen)이 명명한 것이다. 이것은 고전 그리스어 δεινός(무시무시한)와 σαυρος(도마뱀)의 합성어였다. 이걸 일본 학자들이 한자어로 번역하려고 하니, dino는 공(恐)으로 옮기니 문제가 없는데, saur에 해당하는 한자가 없었다. 그래서 붙인 것이 용(竜=龍)자였다. “공룡”의 이름에 “용”이 붙은 것은 그냥 우연이다.

 그러니까 공룡과 용을 연결시킨 것은 이능화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착각, 혹은 의도적인 동일시였다. 전세계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인 용과 실제 지상에 살았던 동물인 공룡을 연결시키는 것은 사실 이능화만의 생각은 아니다. 오웬에 의해 공룡이 별도의 종으로 분류되기 전까지 공룡 화석은 용의 시체로 취급되었다. 4세기 중국 동진 시대의 『화양국지(華陽國志)』에는 지금의 사천성에서 용의 뼈가 발견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용이 승천하려고 하다가 하늘 문이 닫혀서 땅 속으로 들어가 죽었다는 것이다. 전근대 유럽 사람들은 공룡 화석들을 대홍수 이전 동물들의 흔적이라고 하곤 했다.

 이런 떡밥을 아직도 물고 있는 것은 창조과학을 믿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성서나 신화, 옛 그림에 나오는 다양한 용들이 공룡과 인간이 같이 살았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곤 한다.


한국창조과학회 관련기사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905&series_id=A0002&orderby_1=editdate%20desc&page=1


이런 것도 : http://www.nwcreation.net/dinosdragons.html



 근대적인 자연과학자도 아니고 창조과학자도 아닌 이능화의 의도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는 “용의 알”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대체로 서양 사람들은 용이 없다는 논리를 주장하는데, 지금은 또 어찌하여 갑자기 용의 알을 이야기하는가. 동양에는 『주역』에 용의 기사가 많고, 또 『사기』에 공자가 노자를 보고 용에 비유한 것이 있으니, 이것은 모두 상상에 펼쳐진 이야기가 아닌가? 나도 또한 용은 보지 못하였으므로 단언은 하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