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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잡담

라마다경 38장

얼마 전 학과 산하 연구소로 이상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여기에는 평소에도 자기가 깨달음을 얻었다느니, 종교 만들려고 하니까 도와달라느니, 서울대에 신학과를 만들도록 교수들이 협력하라느니 하는 괴인들의 전화가 종종 이어진다고 한다. 이번에는 "라마다경에 대해 연구하는 전문가가 없냐"는 문의가 왔다. 라마다경이라니, 이 무슨 추억 돋는 이름인가.

2000년대 초반이었던 거 같은데, 자동차에 붙은 대형교회(여의도 순복음교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딱지에 이런 문구가 들어가 있었다.

석가모니 가라사대,
'何時爺蘇來 吾道之油無燈也' (하시야소래 오도지유무등야)
"언젠가 야소(예수) 오시면 나의 깨달은 도는 기름 없는 등과 같다." (팔만대장경 라마다경 38:8)

말할 것도 없이 조작이다. 대장경 어디에도 저런 제목의 경전이나 비슷한 구절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 구절에 쓰는 것과 같은 형식의 장절 표시가 이 구절을 '창작'한 사람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만을 보여줄 뿐이다. 어떻게 이런 문구가 나돌아다니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블로그에 꽤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http://a-christ.tistory.com/entry/라마다경-사기극의-전모

기독교측 자료에서 이 '경전'이 처음 언급된 것은 1998년 미국 한인교회의 잡지인 <유타 코리아나>에 소망교회 김용대 목사가 기고한 글인 것 같다. 그런데 1999년 7월 <신앙계>에 실린 김동일 장로의 글에는 정보의 출처가 사랑의 교회 선교부장으로 되어 있으며, 이 글이 "어느 스님이 불경을 읽다가 발견한 글"이라고도 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블로그에 언급된 문헌 자료 중에서 시기가 가장 이른 것이 불교측 자료라는 것이다. 거의 마지막에 나오는 '불교 신행 상담'이라는 것인데, 이것 불교TV에서 1995년에 방송한 신행상담프로의 사례들을 책으로 묶어 낸 것이다. (한정섭, 『불교신행상담』, 불교대학교재편찬위원회, 1996) 1995년 12월 30일에 방송되었던 이 상담에는 문제의 문구가 '기독교 유광수 목사'의 발언에서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방송을 진행한 한정섭 법사는 그 <라마다경>을 실존하는 <라마가경>과 같은 것으로 보고, 이를 "아전인수식 해석"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아전인수고 뭐고 <라마가경>에도 '야소'같은 말은 안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유광수 목사'란 다락방 교회의 류광수 목사와 동일인물이 아닌가 한다. <신앙계>의 글에서 이 이야기가 처음 나온 시기를 '1995년 12월경'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니, 앞의 불교신행상담의 방송 시기와도 겹친다. 따라서 <라마다경> 얘기의 원출처는 아마도 다락방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전승의 발생 시기도 1995년 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불교TV 방송 혹은 여타의 경로를 통해 주류 개신교 교회 교인들에게 흘러들어가고, 전도매체 등을 통해서 널리 유포된 거겠지.

어찌 보면 황당한 해프닝인데, 이게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는 건 재밌다. 꽤 최근까지 이 '라마다경 38장'이 목회자들의 신앙칼럼에 언급되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라마다경 전문>이라고 떠도는 글은 정말 걸작이다. '석가모니 가라사대'같은 척 봐도 웃기는 말 대신 '여시아문'으로 시작되고 팔부대중의 환희로 끝나는 '제대로 된' 불경 형식을 흉내내고 있다. 물론 이런 저런 경전의 적당한 구절을 이어붙이고 문제의 구절을 삽입한 거긴 하지만.

역시 기독교인은 재밌어.


(2014. 4. 21.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