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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잡담

『천주실의』에서의 ‘우상숭배’ 논의

천주실의는 유교에 대해서는 보유론적 입장을 지속적으로 피력하고 있지만, 불교, 도교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특히 불교에 대한 반론은 양적으로도 많고, 내용 또한 구체적이다. 이것은 동아시아 환경에서 천주교가 불교와 유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웠다는 점에 기인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중국 지식인들의 천주교에 대한 의문점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중국 선비의 질문 가운데에도 당신들은 불교와 어떻게 다른가?”라는 것이 종종 등장한다. 천당지옥설, 서방으로부터의 전래, 현세부정, 독신사제직의 존재 등은 분명 동아시아인들에게는 불교와의 유사성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천주교에는 이들 교의적인 부분 못지않게 불교와의 유사성을 드러내는 요소가 있었다. 그것은 성상(icon)의 존재였다. 연경 천주당, 마카오 천주당 등을 방문한 중국인들(그리고 조선의 사신들을 비롯한 여타 동아시아인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예수, 성모, 천사들의 상에 대한 묘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마테오 리치의 거처에 지어진 천주당에는 부인이 병든 아이를 간호하는 모습”, “한 마리의 백조(白鳥)가 날개를 펴고 입으로는 흰 연기를 뿜어 곧바로 부인의 이마에 닿는 모습”, “두 개의 날개가 달린 여자가 손에 창을 들고 사람을 찌르는 것등의 성화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천주실의7편에 나와 있는 ·신상(佛神像)’에 대한 물음들과 그에 대한 리치의 비판적인 답변들은 성상 숭배 자체가 아니라 사신(邪神)의 우상에 대한 비판이다. 리치는 불상에 예배하는 행위는 천주에 죄를 짓는 것이며, 간혹 불상에 기도해 응답이 있는 경우는 사악한 신들이 숨어 있으면서 유혹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또한 불상이나 신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옛날 사람들이 우매하여 곧바로 천주를 알아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권위 있는 사람이나 부모의 상을 세워 복을 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여기에는 그리스도교의 성상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타나지 않은 셈이다.

또한 리치는 사신의 우상을 구분하기는 쉽다고 주장하고 있다. , “아름다운 모습을 한 것은 적고 추악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천주가 친절하게도 사신들에게 천상의 용모를 허락하지 않고, 추악한 모습을 부여해 사람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 성상의 미적 우월성에 대한 자신이 없으면 나오기 힘든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미의식이 보편적이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일례로 1732년에 연경 천주당에 다녀온 조선 사신 이민수(李民樹)는 다음과 같이 썼다. “벽에는 음귀(陰鬼)를 많이 그려서 선방(禪房)의 시왕전(十王殿)과 같다. 보기에 어둡고 밝은 기상이 없으니 괴상한 일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당시 유교 내에서의 성상 논의다. 예수회가 중국에 도착한 명나라 말기는 유교 내의 성상 파괴 논의가 가장 활발했던 시대다. 유자들 또한 불상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으나, 16세기 초 이전까지 공자의 사당에는 공자와 성인들의 화상(畵像)이나 소상(塑像)이 있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1530년대의 의례 개혁 이후로 적어도 공식적인 차원에서는 유교의 성상(聖像)은 폐지되었다. 만약 마테오 리치가 조금만 더 일찍 중국에 왔다면 그는 불상이 아니라 유교의 성인상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공자의 이 존재하는 상황이었다면 이후의 전례 논쟁 또한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띠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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