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월이 Gender and Mission Encounters in Korea: New Women, Old Way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9)의 5장에서 다루고 있는 선교문학작품들, 특히 여성 선교사들에 의해 작성된 소설들은 몇 가지 TV 프로그램의 양식을 떠올리게 한다. 애니 베어드(Annie Baird)의 Daybreak in Korea는 선교지 한국 여성의 비참한 상황을 동정적으로 묘사하면서 본국의 지원을 요청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사랑의 리퀘스트”와 같은 모금방송과 닮았다. 또한 엘라수 와그너( Ellasue Wagner)의 The Concubine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의 부부관계의 파탄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사랑과 전쟁”과도 같다.
종교연구에 있어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은 다루기 곤란한 자료다. 경전, 연대기 등 공식적인 문서들에 비하면 객관성이나 대표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은 동시에 민족지적 기록 이상의 세밀한 묘사와 작가의 경험이 담긴 장르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이들 선교문학이 서양인 선교사에 의해, 서양인 독자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소설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당시 서양인 선교사와 대중들에 대한 민족지적 자료이기도 하다.
선교사들의 소설이 “사랑의 리퀘스트”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면, ‘눈물 포인트’가 중요해진다. 즉, 한국 여성의 어떤 경험이 서양인 독자들의 공감과 연민을 살 수 있는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힘으로 그와 같은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였다는 서사는 독자들의 물질적, 영적 참여를 독려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기록은 서양인들이 ‘이교도의 야만성’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그리고 이상적인 기독교의 미덕을 무엇이라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또한 “사랑과 전쟁”의 형식을 가진 와그너의 소설은 멜로드라마적 형식을 통해 서양인 근대 신여성을 비참한 지경으로 떨어트리고, 현모양처 기독교인 여성이 행복을 얻는 과정을 그린다. 서양인 독자들의 관점에 있어서 이런 소설은 야만적인 첩제도를 가진 이국을 배경으로 한 교훈적인 우화로 보일 수 있다. 근대 여성의 등장에 의한 보수적 젠더 이데올로기의 위협은 당시 서구에서 현저하게 나타났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확장한다면, 문학작품이 아닌 민족지나 학술서, 보고서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공식 기록’은 (소설처럼 적나라하지는 않더라도) 작성자의 의도에 따른 특정한 양식에 의해 작성된 기록들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나 개념, 그리고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태도는 작성자측의 문화와 인식을 드러내는 요소들이다.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관계라는 선입견을 제거하면, 이들 기록은 단순히 한 문화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두 문화의 교차를 드러내는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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