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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잡담/한국기독교

번역과 악마화

 

 신크레티즘에 대한 논의들은 대개 종교들이 뒤섞여있다거나 자신의 종교가 이방적 요소들로 오염되었다는 형태를 띠기 마련이다. 전자를 신크레티즘에 대한 중립적 태도, 후자를 경멸적 태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느 쪽이든 그러한 혼합/오염이 실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규명하기는 쉽지 않다. 브리짓 마이어(Brigit Meyer)신크레티즘을 넘어서(Beyond Syncretism)”가 아프리카 독립교회의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의 관점에서 주목되는 것은 식민/선교 모국의 선교사와 개종자인 아프리카인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아프리카인의 전유 양식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독교 용어들이 아프리카 언어로 번역되면서 그 의미값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기존 종교의 영적 존재들을 기독교적 세계관 속으로 수렴하는 악마화의 기제가 그 중요한 양상으로 제시된다.


 이 글이 다루고 있는 것은 아프리카의 사례이지만, 이 수업의 주제인 한국기독교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선교사 전통을 바탕으로 하되 토착화 신학을 도입한 EPC(old EPC)’와 그런 의도적 아프리카화를 거부하면서도 기층 민중 자신의 요구에 따라 전통종교와 혼합된 실천을 하는 EPC(new EPC)’의 분열이 그렇다. 물론 한국기독교의 경우는 이런 두 경향이 분리주의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통종교의 요소들이 담긴 은사주의적 실천이 오순절 교회나 기독교계 신종교 외에 선교사 전통에 충실한 주류교단에서까지 활발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또한 성경이나 기독교용어 번역에 있어 한국인들의 기존 종교언어들이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었는지, 역으로 기존 종교언어들의 의미가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살피는 것도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 같다.


 ‘번역의 문제보다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악마화라는 주제다. 이것은 기독교만이 아니라 다른 문화의 영적 존재들을 어떻게 자신의 세계관 속으로 편입시키는가?”라는 신크레티즘의 일반적인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문화 내의 지고신에 해당하는 표상을 자신의 신과 동일시하는 현상(하느님, 상제, 마우)으로부터, 기존 영적 존재들을 적대적인 찬조자(악마, 악령, 귀신)로 받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신격들을 자기 종교의 협력자나 수호자로 받아들이는 형식까지 다양한 양태가 있다. 이것은 전파를 지향하는 종교전통 세계관 내에 영적 존재들을 위한 어떤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지와 관계가 있다. 기독교라면 동일시를 필요로 하는 지고신과 성령의 자리가 있고, 적대적 포섭이 필요한 악마의 자리가 있는 식이다. 한편 선신(데바)와 악신(아수라)의 범주가 존재하는 인도 토양에서 발생한 불교는 선교지의 영적 존재들을 호법의 신들과 악하고 저급한 존재들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으로 고려해 보고 싶은 것은 토착문화 측에서는 선교종교가 제시하는 영적 존재들을 어떤 방식으로 포섭하는가 하는 것이다. 김동리의 무녀도에서 등장하는 무녀는 기독교인이 된 아들에게 잡귀가 들렸다고 하며, “예수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산신, 용신, 칠성 등 전통적인 신들을 동원한다. “예수 귀신이란 오늘날 비기독교인들의 언어에서 실제로 등장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또한 기독교가 토착문화의 지고신적 표현을 발굴해 내는 작업은 동시에 전통문화가 자기 문화의 지고신을 재발견하도록 자극한다. 동아시아에서 서학의 전래 이후 상제에 대한 인식이 재구성되었다는 점, 근대 이후 유럽 밖의 신종교들에서 지고신과 메시아적 인물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지게 되었다는 점이 그런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