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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잡담

박근혜의 종교

몇몇 지인들에게 <박근혜의 종교>같은 거 써 보고 싶다고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다. 확실히 박근혜는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 등 이른바 '장로대통령'들과는 다른 의미로 대단히 종교적인 정치인이다.

그가 종종 구사하는 종교적 언어들(대표적으로 '하늘의 뜻')은 분명 특정한 제도종교의 개념들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의 80년대 일기들, 정치 입문 후에 발간된 자서전, 대통령 당선 이후의 발언들 등에서 '하늘'은 일관성 있게 등장하고 있다. '지도자', '영웅' 등의 개념들은 '하늘'과의 연관성 속에서 정의된다.

일부에서는 박근혜의 종교성 혹은 영성에 '죽은 자와의 소통이 가능한' 최태민 부녀의 영향이 심대했을 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혹은 <시크릿>류 자기개발서들과의 유사성도 지적된다.

(역사적 측면에서는 처음 것이 꽤 흥미로움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두 번째 비교다. 이 "종교"에서 강조되는 것은 '힐링', '의지', '성공'이라는, 자기개발서 및 그 저변에 있는 현대 대중종교의 핵심적인 덕목들이다. 좋은 글이나 '멘토'의 강연, 작품 등을 통해 상처를 치유받고, 강한 의지를 품으면 꿈이 이루어진다는 전망이다. 이것은 '하나님 잘 믿고, 십일조 꼬박꼬박 하고, 주일을 성수하면 성공할 수 있다'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더 확실하고 신뢰성 높은 효과를 보장해 주는 교의다.

즉, <박근혜의 종교>는 사실 21세기 한국 직장인들의 대중종교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어린이날의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나, "중동붐은 하늘의 메시지"같은 것은 그 체계의 논리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두 명 연속으로 "하늘이 내린 대통령"을 모시고 있다. 지난 번 대통령의 하늘은 기껏해야 사찰이나 무너트리고 서울시나 봉헌받으려 했는데, 이번 대통령의 하늘은 아예 우주적이다. 버틸 수가 없다.


2015. 6. 10. 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