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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잡담

움베르트 에코의 칼럼에 대하여

[The New York Times] 지구촌 전쟁은 유일신 종교들이 문제다



에코 선생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지만 유일신종교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정복, 침략, 개종강요는 신의 머릿수가 하나라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지역적 정체성을 초월하여 지배력을 행사하는 정치체를 제국이라고 부른다면, 정복적 성향은 제국이 채택하는 종교의 특색이다. 신이 하나인 체계가 제국의 종교가 되기에 유리하기에 자주 선택되는 것이지, 유일신교가 제국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영토를 차지했던 중화제국 역시 유일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믿음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유럽이나 미국을 자국 신앙으로 개종시키려 한 적이 없다. 지금의 중국도 서구의 주식을 인수하며 경제 영토를 점령해가고 있지만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하진 않는다. 그래서 서구인이 예수를 믿든, 알라나 야훼를 믿든 중국의 경제 이익은 침해받지 않는다. "

이 구절은 특히나 시대착오적이다. 선교와 식민지 수탈이 동시에 이루어지던 상업 자본주의시대와 딱히 그럴 필요가 없는 금융 자본주의 시대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중국이 종교를 활용하는 방법은 개종이 아니다. 염제와 황제, 공자를 통해 국내의 이질적 민족들과 세계 각지의 중국인들을 "하나의 중국"으로 묶는 편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근대로 가면 또 상황이 다르다. 중국이 유럽과 미국을 자국신앙으로 개종하려 한 적은 없지만, 한반도는 중국에 의한 '개종'을 겪은 바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현지의 '토착종교'에 대해 국가의 유교가 그리스도교나 이슬람보다 특별히 관용적이지도 않았다. 종종 '하늘의 아들(天子)'인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종교체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하늘의 군대(天兵)'가 정벌을 갔다. '의로운 전쟁'은 유일신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신이 믿는 신을 강요하기 위한 전쟁"은 유일신교 비판의 상투구다. 그러나 저 십자군마저도 이런 모델에 들어맞지는 않는다. 십자군은 그리스도교 국가인 비잔틴을 약탈했고, 필요할 땐 무슬림 세력과도 협력했고, 이교도를 개종시키려 하기보다는 그냥 죽였다. 많은 경우 종교는 전쟁과 잘 결합할 수 있는 명분 가운데 하나이거나, 종족적 갈등을 일으키는 정체성 차이를 구성하는 요소 중의 하나였지, 전쟁의 원인 자체는 아니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어릴 때 열심히 읽던 시오노 나나미의 유일신교 까기를 떠올렸다. 에코의 주장은 거기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로마제국과 일본제국의 '다신교'에 대해서는 상당히 완화된 기준을 적용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당한 건 이스라엘의 신을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로마가 숭배하는 신의 정통성을 부인했기 때문이다"같은 구절이 그렇다.

카이사르나 천황에 대한 경배를 거절한 제국의 신민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한다면, 신이 여럿인 종교가 하나인 종교보다 더 관용적이라는 직관에는 도저히 신뢰가 가지 않는다.


2015. 5. 5. 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