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몬 마구스’들
한 승 훈
1917년에 출간된 영국선교사들의 기록인 The English Church Mission in Corea에 실린 세실 허지스(Cecil Hodges)의 보고에는 무속과 귀신 쫓는 행위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들이 나온다. 세례명이 요한이었던 개종자가 죽자 그 가족들이 배교를 하였다. 그런데 가족 중 한 사람이 병에 걸리자 부른 무당은 죽은 아버지의 영이 들린 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요한의 영인데, 너희들이 신앙을 버리고 나를 위하여 기도를 하지 않으니 편히 쉴 수가 없구나. 즉시 회개하라.” 무당이 병의 원인을 기독교 신앙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셈이다. 처방 또한 충격적이다. 이 가족은 무당의 지시에 따라서 귀신을 섬기는 제구와 위패를 묻거나 태워버린다.
이런 사건은 선교사들이 토착 종교에 대한 적대감을 강하게 표명하지 않는 상황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허지스의 보고에 의하면 사제들이 신도들의 집을 축복하러 가면 동네의 무당들이 모여들어 “기독교 무당(Christian wizard)”들은 어떻게 하는지 배우러 모여들었다고 한다. 허지스는 이를 사도행전에 나오는 ‘시몬 마구스’의 일화와 비교하고 있다. 사마리아의 유명한 마술사였다가 세례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는 시몬은 분명 무당과 같은 토착적 주술사들을 인식하기 위한 범주로 적절했다.
옥성득이 “Healing and Exorcism”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초기 전도부인들 가운데에도 무당 출신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기독교식 엑소시즘에 종사하였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행위를 인정한 네비우스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은 이에 대해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 또한 귀신들림 현상이 자주 나타나고 기독교인들에 의한 축귀가 실천되는 동안 선교사들은 성서에 나타나는 치유와 축귀를 재평가하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허지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영국에서 교회 안에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이것을 망각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너무 영리해져서 악한 귀신에 사로잡히는 것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감사할 것은 한국인들은 그처럼 영리하지 않아서 기적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을 겸손하게 만들어 복음서에 나오는 이야기와 우리 주님의 약속과 능력을 좀더 단순하게 믿는 믿음을 구하게끔 만든다.
이것은 선교현장에서 나타나는 비교종교론에서 흔히 간과되는 측면을 보여준다. 비교는 선교지의 토착종교를 분류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종교사에 대한 진화론적 구도를 가지고 있었던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원시 혹은 고대종교의 흔적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성서 역사의 특정한 시대와 대응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토착종교는 때로는 구약 시대의 바알과 아세라 신앙으로 인식되고, 한편으로는 고대 히브리 신앙의 파편으로 믿어지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귀신들림과 축귀에 대한 신앙은 신약시대의 사건들과 비교되기에 적합했다. 이 경우 귀신에 대한 토착적 인식은 부정되기보다는 재구성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그리고 시몬 마구스에 대한 베드로의 승리, 귀신을 쫓아내는 복음서의 기적과 같은 사건이 선교의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된다. 선교지 토착종교와의 비교는 성서의 시간 속에 선교사들 자신의 경험을 위치지우는 행위이기도 했다.
-2014. 12. 5.
'종교학 잡담 > 한국기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산 "신본주의" (1) | 2018.04.21 |
---|---|
"하나(1)+님 = 유일신"설에 대해 (0) | 2017.12.04 |
동아시아적 기독교 용어들 (0) | 2015.08.16 |
“알려지지 않은 신”과 “우상에게 바친 고기” (0) | 2014.11.28 |
이교의 성현을 배치하는 법: 최병헌의 『성산명경』과 길선주의 『만사성취』 (0) | 2014.11.28 |